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일인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에서 3학년 학생이 교사로부터 성적표를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 재수해야겠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표가 배부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북고의 3학년 5반 교실. 성적표를 펼쳐본 한 학생이 말했다. 각자 성적표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은 학생들 사이에선 ‘아’ 하는 탄식이 곳곳에서 나왔다. 이 반 담임 A씨는 “불수능이라 결과가 아주 좋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니 한 사람씩 나와 받을 때마다 박수를 쳐주자”며 독려했다.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평가를 받는 2024학년도 수능 성적표가 배부됐다. 국어 영역 표준점수 최고점수가 전년 대비 16점 치솟고 만점자는 1명에 불과했다. 몇몇 입시업체들은 ‘재수반’을 개강하는 등 이미 불수능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킬러문항 배제 방침이 만든 혼란으로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들이 다시 재수를 선택하면서다. 의대정원 확대 등 요인도 있다. 이에 교육계에선 내년도 사교육 시장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024학년도 수능은 이례적으로 어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킬러문항 없이 상위권 변별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 출제 당국이 준킬러(중고난도) 문항을 다수 배치하면서다. 교육계에선 출제 당국이 변별력 확보에만 집중해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출제 당국 역시 향후 난이도는 조절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하며 영어 영역 절대평가 전환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에 대해 “난이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를 향후 전문가 의견과 금년 시험 결과를 분석해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수능이 ‘역대급’ 난도였다는 사실은 수치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전날 발표한 수능 채점 결과 분석에 따르면 2024학년도 수능 국어영역 표준점수 최고점은 150점으로, 전년 수능(134점) 대비 16점 상승했다. 난이도 조절 실패로 평가원장이 나서서 사과했던 2019학년도 수능(150점)과 함께 역대 가장 높다. 만점자는 371명에서 올해 64명으로 줄었다. 표준점수란 개인의 원점수와 평균성적 간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로, 시험이 어려울수록 높아진다.

수학 표준점수 최고점 역시 2022년도 통합 수능 도입 이래 최고치인 145점으로, 전년 대비 3점 높았다. 만점자는 934명에서 612명으로 줄었다. 영어 영역도 2018년도 절대평가 도입 이래 1등급 비율이 4.71%로 가장 낮았다. 영어 1등급 비율이 한때 16.25%(20학년도), 12.66%(21학년도)까지 올랐던 것에 비해 크게 낮아진 수치다. 이는 상대평가 체제의 1등급 비율인 4%에 준해 절대평가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영어 절대평가는 학생들 사이 무의미한 경쟁과 사교육 부담을 줄이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사교육 부담 경감을 목표로 치러진 수능이지만, 시장에선 역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올해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이 재수를 택하면서 입시시장에 더욱 몰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서울 강남구 소재 한 재수학원 관계자는 “명문고 학생들 사이에선 수능을 일제히 망치면서 ‘다같이 재수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며 “학원가에선 올해 수능에 적용된 새로운 출제 방향성을 바로 커리큘럼에 반영해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종로학원은 내년 1월2일에 재수반을 개강하고, 기타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들 역시 통상 1월 중순이던 개강 시점을 당기고 일찍이 재수반 모집을 시작했다.

재수생이 늘어나면 예비 고3 재학생들의 사교육 압력 역시 강해질 수밖에 없다. 재수생에 실력이 밀릴 수밖에 없는데다 내년 수능 역시 어려운 기조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킬러문항 없는 수능의 난이도 기준을 올해로 볼 때, 수험생들은 전 영역을 어렵게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수험생 입장에선 학교에서 높은 난이도의 문제를 별도로 준비해주지 않는 이상 사교육 시장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내후년부터 본격화할 의대정원 확대 역시 재수생을 늘리는 요인이다. 킬러문항 배제를 기회 삼아 의대 입시를 위한 반수를 선택했다 실패한 상위권 대학 재학생들이 내년 본격적으로 수능을 준비할 가능성도 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최상위권 학생들은 의대 정원 확대로 모집 정원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기면서, 한번 더 수능에 도전하는 현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가원에 따르면 졸업생 등 N수생 비율은 14학년도 수능 21.3%에서 10년 사이인 올해 35.4%까지 올랐다. 최근 5년간 N수생 비율은 ▷20학년도 28.3% ▷21학년도 29.9% ▷22학년도 28.9% ▷23학년도 31.1%로 매년 오르는 추세다.

박혜원·안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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