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개혁위 안(案)은 호랑이 안이었는데 반 토막이 나서 고양이 안이 됐다.”

지난 2017년 10월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정부안을 두고 어이없어 한 말이다.

공수처 조직안 초안을 마련한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그해 9월 정부에 권고한 안은 ‘검사 50명 등 최대 122명 규모’였다. 야권을 중심으로 ‘슈퍼 공수처’라는 비판이 대번에 나왔다. 그러나 한인섭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은 “50명을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당시 부패범죄를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 검사는 75명이었다.

박상기 법무부가 발표한 정부안은 검사 25명에 수사관 30명·일반직원 20명 등 총 75명. 수사인력은 처장·차장을 포함해 55명이 고작이었다. 개혁위 권고안의 3분의 1로 쪼그라든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 조차 “(법무부 안대로라면) 1년에 2∼3건도 (수사가)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같은 해 11월 대한변협을 찾아가 “(공수처가) 청와대 등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과 검찰에 대한 감시·견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검사도 25명 수준으로 제한하는 등 수사권 남용 우려를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2017년 10월 16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발표와 관련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 다음이 더 문제였다. ‘고양이 공수처’안은 거의 그대로 20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인 민주당과 정의당 등 일부 야당은 ‘폭력국회’, ‘동물국회’를 연출하면서 검경수사권조정법안과 함께 공수처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웠다.

패스트트랙 지정에 성공한 더불어민주당은 잔치 분위기였다. 몸을 던져 ‘일’을 성사시킨 당 지도부는 ‘검찰개혁’의 영웅이 됐다. 그러나 이들 모두 공수처가 과연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법안 통과’ 자체가 목표였다. 검사 25명의 공수처가 수사할 대상은 총 7000명 안팎. 고도의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2000명, 판사가 3000여명이었다.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0년 12월 10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진 검찰개혁을 위한 의지가 촛불시민의 힘 덕분에 현실화된 것”이라고 자평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시설 공수처를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조 전 장관이다.

정성호 의원의 6년 전 예언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공수처가 출범이후 3년간 구속영장을 다섯번 청구했지만 모조리 기각됐다. 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는 3명, 이들 중 ‘고발사주 의혹’ 손준성 검사와 ‘뇌물 혐의’를 받는 서울경찰청 김모 경무관에 대해서는 두번씩 청구됐다. 영장이 한 번 청구된 피의자는 감사원 3급 간부다. 기소 사건 3건 중 2건은 1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손 검사가 기소된 고발사주 사건은 현재 재판 진행 중이지만, 녹록지 않다.

여야 4당이 2019년 4월 29일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 등에 대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시도하기로 한 가운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선거제 패스트트랙지정 저지 농성을 벌이는 자유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바닥에 누워 있다. [사진=뉴시스]

초대 공수처는 3년 내내 동네북이 됐다. 공수처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 찬성했던 사람들은 “실망이다”라며 서로 떠다 밀었다. 기자들도 발제 거리가 없으면 ‘공수처나 조지며’ 조리돌림했다. 검찰은 공수처를 수사기관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공수처를 낳은 국회는 어떤가. 김진욱 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인원을 40명으로 늘려달라며 3년 내내 여야 문턱이 닳도록 찾아갔으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민주당 조차도 ‘국민의힘이 반대할 것이 뻔하니 단독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당 지지율이 떨어진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걸핏하면 공수처에 고발사건을 던진다.

급기야 공수처가 제 살과 뼈를 깎는 상황까지 몰렸다. 재판을 담당하는 공소부를 없애고 수사부서를 4개로 늘리기로 한 것이다. 공소부는 ‘수사-기소 분리’라는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핵심을 실현하기 위한 시도였다. 법원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기 위한 수사의 실효성은 차치하더라도, 공수처로서는 인력부족이라는 현실 때문에 이상적인 공소기관으로 가기 위한 도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회 위원장이 2021년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참석해 현판 제막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내년 1월 김진욱 공수처장 임기만료를 앞두고 공수처 새 수뇌부 인선이 한창이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은 없어 보인다. 판사출신 처장에 검사출신 차장이 선발될 거라지만 누가 와도 지금의 공수처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니 법조계에서는 정치권이 ‘공수처가 자연사 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내년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민주당은 본인들이 낳은 공수처를 책임져야 한다. 따지고 보면 공수처가 먹은 욕들은 죄다 민주당이 먹었어야 했다. 대책이 필요하다. 태생이 다분이 정치적이었던데다 제 구실 못하는 공수처를 전격 폐지하든지 아니면 정상화하든지 만든 사람들이 총대를 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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