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잠옷 200여명 긴급대피…대피소 오가고 이재민 돼 망연자실

불난 집선 70대 남녀 구조…이웃 “주변과 왕래 별로 없었다”

25일 새벽 화재가 난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에 마련된 재난현장 통합지원본부
25일 새벽 화재가 난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에 마련된 재난현장 통합지원본부

[촬영 계승현]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계승현 기자 = “‘펑’ 소리가 나서 나와봤더니 불이 났다더라고요. 집 안이 온통 그을음이에요.”

25일 새벽 31명의 사상자를 낸 화재가 발생한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부부는 기자에게 그을린 옷자락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노부부는 지친 목소리로 “전후 사정은 모르겠다. 이제 집에 들어가 봐야겠다”며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날 오전 찾은 화재 현장에서는 눈이 내리는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잔여물 정리에 한창이었다.

3층에서 시작된 불이 위층으로 순식간에 번지면서 아파트 17층까지 외벽이 그을려 있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2·3·4층은 유리창도 모조리 깨져 위급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게 했다.

아파트 측은 경로당에 임시 대피소를 마련하고 “경로당 앞에서 비상식량을 나눠드리고 있으니 나오세요”라고 안내 방송을 했다.

담요 9세트, 적십자 구호 물품 30박스, 비상식량 15박스, 생수 350병을 준비해 화재 피해를 본 같은 동 주변 라인의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주민 10여명이 대피소를 바삐 오가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비상식량을 받아 갔다.

도봉구청은 현장에 통합지원본부를 꾸리고 이재민 관리 등을 하고 있다. 한 중년 남성은 잠옷을 입은 채 본부 내 구급대원으로부터 기침을 호소하며 진찰을 받기도 했다.

차분하게 연말을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할 시기에 일부 주민은 이재민 신세가 됐다.

구청 측은 망연자실한 피해 주민을 위해 주변 3개 모텔에 이재민 임시거주시설도 마련했다. 9개 객실, 18명이 머물 수 있는 규모다.

25일 새벽 화재가 난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에 마련된 재난현장 민원접수처
25일 새벽 화재가 난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에 마련된 재난현장 민원접수처

[촬영 계승현]

밖에 나온 주민들은 내리는 눈을 피해 우산을 쓴 채 배부받은 비상용 핫팩을 들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화재 현장을 올려다봤다. 일부는 정신없이 대피한 탓에 맨발 또는 잠옷 차림이거나 제대로 겉옷도 챙겨입지 못한 상태였다.

주민 나모(65)씨는 “이 아파트에 20년을 살았는데 화재는 처음”이라며 “성탄절에 이게 무슨 난리인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나씨는 불이 난 사실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면서 “관리사무소에서 안내 방송이 전혀 없었다. 주민들이 다 같이 항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불이 난 집에서는 부부로 추정되는 70대 남녀 각 1명이 구조됐다. 이들은 허리 통증과 연기 흡입에 따른 고통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들은 이웃과 왕래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층에 거주하는 김모(60)씨는 “직접 부딪혀본 적은 없지만 부부가 살고 있고, 자식들이 종종 오가긴 했으나 약간 은둔형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씨는 “9월에 경매가 낙찰됐다는 말을 들었고 유리창에는 이것저것이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면서 “경매가 낙찰됐으면 비워줘야 하는데 계속 지내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화재로 30대 남성 2명이 숨지고 70대 여성 1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 28명이 대피 과정에서 넘어지거나 연기를 흡입하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 중 20여명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다.

경찰은 방화 등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26일 합동 현장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25일 새벽 화재가 발생한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아파트
25일 새벽 화재가 발생한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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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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