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및 구매자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악용해 미성년자들이 무전취식을 시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한 술집에서 10대 학생들이 술을 먹고 계산하지 않고 도망하면서 중간계산서에 남기고 간 메모.[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경찰이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단속한다? 거의 불가능이에요. 대부분은 확실한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서죠. 신고자는 손님이에요. 자기가 이용(구매)하고 나서 서비스가 맘에 안 들어서 신고하는거죠.”(서울 일선경찰서 경제팀 수사관)

우리 주변의 많은 업종에서 영업상 불법행위가 알게 모르게 부지기수로 이뤄진다. 판매자와 구매자, 업주와 손님 모두 불법임을 알지만 서로 눈감아주면서 ‘공생’하는 구조다. 하지만 처음부터 약점을 잡아 이득을 취하고자 마음먹고 접근하는 손님도 있는데다, 상품과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경찰을 찾아 판매자를 고발해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구매자는 처벌되지 않기에 대담하게 신고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법’임을 인지하고 가담한 손님은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점에서 짐짓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구매자는 신고 뒤 유유히 빠져나가…판매자는 “뒤통수 맞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청소년들이 미성년자임을 숨기고 주점 또는 음식점에서 술을 마신 뒤 판매자만 처벌받는다는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거나, 술값을 내지 않겠다며 버티는 경우다.

지난해 12월에도 인천의 한 식당에서 10만원이 넘는 음식과 술을 시켜 먹은 남·녀 학생들이 ‘신분증 확인 안 하셨다’는 협박성 쪽지를 남기고 달아나는 사건이 알려져 자영업자들의 공분을 샀다.

식당 주인은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 적발되면 청소년보호법상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식품위생법상 영업정지(과징금) 처분을 받거나 여러 번 누적될 경우 영업허가가 취소된다. 비슷한 사례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대통령실은 지난해 12월 20일 “청소년에게 속아 술·담배를 판매한 영업점의 경우 과징금 등 처벌을 유예하고 구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성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본인들이 불법인 노래방 도우미를 불러서 술을 마시면서 놀다가 영업장을 경찰에 신고한다. 노래방 업주와 도우미는 음악산업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는다. 정작 도우미를 부른 손님은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짝퉁(가짜 명품)’을 팔고 사는 행위도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 가짜 명품임을 알고 산 구매자가 돌연 앙심을 품고 판매자를 고발하는 경우다.

상표법상 판매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해당 제품에 상표권이 존재하면 상표권 침해죄, 상표권이 없더라도 유명한 제품을 카피하면 부정경쟁방지법을 어긴 것이 된다.

반면, 구매자는 ‘짝퉁’임을 인지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받지 않는다.

토요일 저녁을 설레게 만드는 복권 로또 구입도 마찬가지다.

복권및복권기금법상 중독, 사행성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인당 구매(판매) 한도는 10만원으로 정해져있다. 이를 어긴 판매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구매자가 복권을 여러번 나누어서 구매할 경우에는 판매자가 얼굴을 일일이 기억해서 따져가며 팔 수 없는 실정이다. 구매자가 고발하면 판매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오피스텔에서 불법으로 운영하는 에어비앤비(공유 숙박시설)도 대부분 투숙객의 신고로 덜미를 잡힌다. 공중위생관리법상 오피스텔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 역시 투숙객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행정법 취지상 영업자 제재할 수밖에…형사처벌은 제한적이어야”

위 사례들 외에도 수많은 행정법에서 비슷한 일들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행정법은 국가가 영업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법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손님, 구매자 등 개인을 제재하고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형평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구매자까지 함께 처벌하는 것은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태민 변호사(식품위생법률연구소장·변호사시험 1회)는 “행정처분이나 행정지도가 되려면 그 대상이 영업자여야 한다”며 “이 사람들(구매자, 소비자)은 영업자가 아니기에 행정법상 패널티를 부여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대부분 단속에 걸리는 자영업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방조한 경우이고, 정말 위조된 신분증 등으로 속임을 당해서 자기 의무를 다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법에서도 참작을 해준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또 “국가가 영업자를 관리하는 이유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사회적 일탈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며 “일례로 술집 사장이 제대로 신분증 확인 등 관리를 하지 않으면 그 동네 청소년들 여럿이 그 가게에서 술을 마시게 돼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김남곤 법률사무소 비컴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44기)도 “국가는 일정한 인적 요건이라든지 물적 요건들을 구비한 이후에 신고 또는 허가를 통해서 관련 영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다”며 “때문에 해당 법들엔 판매하는 자, 영업을 한 자, 이런 사람들을 처벌하는 조항만 마련돼 있는 것이고 구매하거나 이용한 사람은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테로이드 등 전문의약품을 불법으로 판매한 사람에 더해 구매한 사람들까지 처벌하도록 법이 개정된 사례를 보면 사회적으로 구매자까지 처벌해야 한다는 광범위한 합의가 이뤄지고, 그로 인해 입법이 이뤄졌을 때 비로소 사법부에서 처벌이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도 “구매자, 이용자까지 일괄적으로 처벌한다면 겁나서 아무도 신고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걸 막아버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형사처벌은 개인을 상대로 한 국가의 보복이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가져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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