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중증환자들과 논의했나

제네바 선언에 ‘파업’조항은 없다

의사 이익보다 국민 이익 더 중하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의료 문외한이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들 정말 해도 너무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집단으로 일손을 놓고 의료 현장에서 떠났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정부가 의사들의 면허를 위협하는가? 의사들의 의료행위에 간섭하고 있는가? 의사들의 수입을 무리하게 제한한다고 여기는가?

제도상의 각종 규제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정부의 자의적인 기준이나 판단에 따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정부와의 일전불사를 외치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라고 기염을 토하면서! 대한의사협회의 전 회장이 한 말이라는데 그렇다면 의사집단은 정부보다 상위의 조직인가?

의사들은 중증환자들과 논의했나

정부의 정당한 권한 행사 임무 수행을 막아서서 승리를 호언하는 조직이 있다면 정상 국가라고 할 수 없다. 특정 이익집단에 굴복하거나 대항을 포기하는 정부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의사집단만 무서운 게 아니다. 의사의 승리가 선언되는 순간 다른 많은 이익집단도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려 할 게 아닌가. 그런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건가?

의사들은 그간 세 번의 대결에서 정부를 굴복시켰다고 해서 의기양양해라 한다고 들린다. 2000년 의약분업, 2014년 원격의료, 2020년 의대 증원을 이유로 한 의사들의 파업에서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거의 백기 항복 수준이었다고 평가됐다.

의사들은 그 경험을 믿고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의 증원 계획을 취소시키려 실력행사를 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가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묻고 싶어지는데 의사들은 환자 및 국민들과 어떤 협의를 얼마나 많이 했는가? “문외한이 뭘 안다고 그러느냐”고 따지지는 마시라.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의 진료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일개 국민이다. 그걸로는 자격이 부족한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대로에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 의료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참여 의사들이 치켜든 피켓에 적힌 구호가 황당했다.

“나는 노예가 아니다. 나는 공공재가 아니다. 나는 공무원이 아니다.”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다. 대한민국 모든 대입 준비생과 모든 학부모가 선망해 마지않는 학과가 ‘의학과’라고 한다. 초중고 학생들의 희망 직업 순위에서도 의사는 최상위급이다. 그런데 ‘노예’라니! “우리가 누구인데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냐”라는 뜻인가? ‘노예’는 커녕 정부의 행정절차 집행에도 꿈쩍 않는 권력자들 아닌가? 중환자, 응급환자들의 생살여탈권을 쥔!

‘공공재’는 또 뭔가? 의료 자체는 공공재다. 당연히 정부가 정책적으로 조정할 수가 있다. 의사는 물론 공공재가 아니다. 그렇지만 대표적인 공인(公人)이다. 국가가 면허 제도를 통해 신분과 사회적 지위에다 이익까지 보장‧보호해 주는 직업인 아닌가? 그렇다면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가 따른다는 것도 알 텐데 이 점은 외면하고 싶은 건가?

‘공무원’ 운운도 듣기가 아주 거북하다. 공무원처럼 정부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인 듯한데 남다른 사회적 평판과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고루하다. 공무원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자신들은 정부의 결정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신분이라는 뜻인가? 그래서 정부의 의료정책까지도 집단으로 거부하면서 한판 뜨자고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이런 인식을 갖고 행동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

의협의 전 회장은 여전히 기고만장이다.


그는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에 다시 ‘정부와 의사들’의 관계에 대한 글을 올렸다.

제네바 선언에 ‘파업’조항은 없다

“내가 처음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문장을 썼을 때는, 상식적인 정부를 전제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의사를 악마화했다. 최소한의 양식과 양심은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왜냐면, 노무현/문재인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한다. 의사가 이런 비상식적인 정부를 이기기는 힘들다. 언제나 정당하게 승부하는 사람은 반칙하는 상대를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겼다. 그런데 의사들이 진 것이 아니다. 정부가 이기고, 국민이 진 것이다. 의사는 지지 않는다. (후략)”

더 독한 표현도 이어졌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그가 주장하는 바를 짐작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정부는 비상식적인 조직 혹은 집단이고 자신들은 정당하게 승부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겠다. 의사가 질병과 승부한다면 말이 되지만 그 외에 누구와 승부를 한다는 것인가? 의사는 정부와 승부를 가리는 또 다른 정부인가? 정부가 이겼는데 진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국민이라고 한다. 국민이 언제 정부와 싸우자고 했나? 먼 훗날 의대 정원의 증원이 국민에게 끼칠 해악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의사들의 집단파업을 독려하고 있는 사람이 국민 걱정을 하다니!

‘악마화’는 ‘자격지심’으로 들린다. 정부가 응급환자, 중증환자의 처지를 걱정하며 전공의들에게 병원 복귀를 촉구하는 게 ‘악마화’인가? 상식적인 정부가 되려면 집단 사직하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 집단에 박수라도 보내야 한다는 건가? 수술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수술받지 못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 환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집단파업을 하고 있는 전공의들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행위에 가담한 것일 수 있다.

의업은 정부를 위해 있는 게 아니다. 환자를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하고 목숨을 구하는 성스러운 직업이다.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나의 의술을 양심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베풀겠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

●나는 종교나 국적이나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제네바 선언’ 11개 항 가운데 일부다.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흰 가운을 입고 행하는 선서라고 들었다. 그 선언(혹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어디에 집단파업이 끼어들 틈이 있는가?

그런데 1만 명에 가까운 전공의들이 환자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병원을 떠났다. “우리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한 번 겪어보라”는 대정부 압박이다.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지난달 19일부터 전공의들의 사직이 시작됐으니 보름이 지났다. 환자나 가족, 그리고 정부는 애가 타지만 의사들은 여유만만이다. 6개월도(의약분업 파동 때) 버텼는데 보름이 무슨 문제이랴 해서?

의사 이익보다 국민 이익 더 중하다

전공의들만이 아니라 수련의들도 동조 사직에 들어갔고, 의대생들은 집단 휴학으로 저항에 동참하고 있다. 전임의들이 가세하는가 하면 의대 교수들은 겸임 해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일부 교수는 “정부의 사법적 처리가 현실화된다면 스승으로서 제자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라며 공동대응의 의지를 과시했다. 놀라워라! 교수들의 눈에 제자는 보이는데 환자와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는 뜻 아닌가.

국민의료대책 마련, 국가 의료체계 구축, 의료인 확보 등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규모와 완급이 조정된다. 의사들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의사들이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에 반대해서 집단파업을 벌이는가? 거창한 핑계나 명분을 내놓고 있지만 한 마디로 의대 정원이 늘면 의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희소가치와 수입이 줄어든다는 판단 때문이 아닌가? 얼마나 더 뻐기고 얼마나 더 벌어야 만족할 것인가?

교육부에서 지난달 22일부터 지난 4일까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신청을 받은 결과, 총 40개 대학에서 3401명 증원을 신청했다고 한다. 증원을 요청하지 않은 대학은 없었다. 정부는 2000명을 늘리겠다는데 의대들은 1401명이나 더 늘려달라고 한 것이다. 그냥 신청한 게 아니라 평가인증기준 준수 등 의료의 질 확보를 전제로 한 증원 신청 규모가 그렇다.

면허증을 가진 사람들이 신규진입자를 제한하기 위해 내세우는 ‘의학교육 부실화’ 핑계가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증거다. 설령 그럴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정부와 대학 당국의 과제다. 왜 의사들이 파업의 핑계로 삼는가. 의료의 질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집단 사직으로 병원의 진료체계를 마비시키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정부는 또다시 백기를 들 때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영구히 발목 잡힌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고통 없이는 변화도 없다. 차제에 의사들이 본분을 망각하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집단행동으로 의사가 부족해지면 해외 의료인 유치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의대생들의 집단휴학으로 교실이 비면 과감한 편입으로 학생들을 채우는 방안도 강구할 일이다.

국가 의료체계가 어떻게 부실해지든 ‘의사 면허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우선이라고 여겨 의료 현장을 마비시키는 의사들은 ‘제네바 선언’의 그 의사가 아니다. 그들의 이익을 정부가 지켜줘야 할 까닭이 있을 리 없다. 의사들의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국민의 목소리도 있다. 의사의 이익이 중하면 국민의 이익은 더 중하다. 과격 의사집단에 끌려가는 정부를 보고 싶지는 않다. 일개 필부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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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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