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현역 의원 114명의 제22대 총선 공천 방식을 확정했다. 이 중 현역 의원 10명은 재배치된 지역구에 공천이 된 상태다. 선당후사와 이기는 공천을 내건 국민의힘은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역구 재배치에 나섰다. 초·재선 의원 상당수도 험지 출마 제안을 수용하고 있다.

본격적인 총선까지 한 달 정도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 공천은 이 같은 지역구 재배치 전략으로 잡음을 최소화하는 모양새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옮기는 건 오히려 현역 의원들의 정치적 죽음만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7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현역 의원 114명 중 34명은 제22대 총선 공천에서 이른바 ‘물갈이’ 대상이 됐다. 불출마를 결정한 의원 11명을 포함해 경선 컷오프(본선 탈락)된 의원 8명, 지역구 공천에서 배제된 의원 8명, 경선 포기한 의원 7명을 합한 숫자다.

다만 12개 지역구에서 아직 경선이 진행되고 있고, 국민공천제도로 진행되는 현역 지역구 3곳에 대한 결과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지정한 국민공천제도 지역 5곳 중 3곳은 울산남갑·대구 동갑·대구 북갑으로 각각 이채익(3선)·류성걸(재선)·양금희(초선) 의원의 지역구다. 때문에 남은 기간 공천 결과에서 ‘현역 물갈이’ 폭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당선된 지역을 떠나 당선 이력이 전혀 없는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해 공천을 받았거나 지역구 재배치를 고려하는 현역 의원은 총 10명이다. 영남권의 ‘낙동강 벨트’나 수도권의 ‘한강 벨트’ 등 최대 격전지 탈환을 위한 결정이라는 것부터 당초 자신의 지역구에서 컷오프(공천 배제)된 뒤 험지로 출마하는 경우, 공천 신청 전 자의로 지역구를 이동하는 경우 등 재배치 이유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예가 영남권 최대 격전지이자 험지인 ‘낙동강 벨트’ 재배치다.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꼽히는 낙동강 벨트 지역에 PK(부산·경남) 지역 중진인 서병수(5선·부산 부산진갑→부산 북구갑)·김태호(3선·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군→경남 양산을)·조해진(3선·경남 밀양시·의령·함안·창녕군→경남 김해을) 의원을 우선 추천(전략 공천)해 재배치했다.

당초 자신의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당 상황에 맞춰 지역구를 이동한 의원들도 있었다. 태영호(초선·서울 강남갑) 의원은 서울 구로을 출마를 선언한 뒤 단수 공천됐고, 박진(4선·서울 강남을) 의원은 본인 지역구에 이원모 전 대통령비서실 인사비서관과 함께 공천을 신청했다가 이후 서울 서대문을에 전략 공천됐다. 이용호(재선·전북 남원시·임실·순창군) 의원도 서울 마포갑 출마를 준비하다가 서울 서대문갑으로 지역을 옮겨 단수 추천됐다.

또 선거구가 획정되면서 지역 재배치가 이뤄진 경우도 있었다. 김도읍(3선·부산 북·강서을) 의원은 부산 강서에 전략 공천됐고, 한무경(초선·비례)·유의동(경기 평택을)의원은 각각 평택갑·병에 단수 추천됐다. 이외에 박성중(재선·서울 서초을→경기 부천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공천에서 컷오프(공천 배제)됐다가 험지로 재배치됐고, 유경준(초선·서울 강남병) 의원도 컷오프되면서 수도권 격전지에 재배치가 검토되고 있다. 유 의원에 대한 재배치 후보 지역으로 부산 북을, 경기 화성정, 경기 용인을 등이 거론된다.

당내에서는 지역구 재배치를 현역 의원들에게 총선에 출마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주면서도 현역 물갈이까지 이끌어낸 묘수라고 평가한다. 당 관계자는 “당 입장에서 보면, 당에 헌신하고 지역 관리에도 힘썼던 현역 의원들은 중요한 총선 전략 자산”이라며 “공천을 통해 인적 쇄신을 하지 않으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데, 이들의 능력을 총선에 대거 활용하면서도 공천 잡음까지 거의 나지 않게 한 건 묘책 중에 묘책”이라고 말했다.

한 다선 의원도 “당 차원에서 총선 승리를 이유로 지역구 재배치를 요구했다면 응당 따르는 게 맞는다고 본다. 그것도 새로운 지역에서 다시 출마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나.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거기에 지역구별 인물 교체까지 완벽하게 이루고 다른 당처럼 공천 파동으로 시끄럽지도 않았다.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나”라고 했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사진은 지난달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4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사진은 지난달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4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뉴스1

다만 당 일각에서는 새 지역에서 기존 조직을 장악하고 유권자에게 본인을 알리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 강세 지역과 같은 험지에 재배치된 경우에는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배치된 한 후보 측 관계자는 “새벽부터 밤까지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 공원 등 지역민들이 많이 있을 법한 곳에 가서 인사를 하면서 후보가 이곳에 출마한다고 알리지만 기존 지역구에서 선거운동을 할 때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르다. 더 험난하다”며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당선이 될까 스스로부터 의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제21대 총선 당시 지역구를 바꿔 출마에 나선 현역 의원들의 성적표는 좋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상수 전 의원의 인천 동·미추홀 재배치 후 낙선이다. 당시 안 전 의원은 인천시장을 지낸 만큼, 인천 내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었고 인천 중·동구와 강화·옹진군 지역구 관리로 이미 인천 내에 인지도도 높았지만 지역구 재배치로 당선되지 못했다. 이외에도 서울 서초갑에서 3선을 지냈던 이혜훈 전 의원도 서울 동대문을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고, 김재원 전 의원도 지난 총선에서 경북 지역구가 아닌 서울 중랑을로 옮겨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이 추구한 공천 전략의 진면목은 대진표 완성 이후에야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국민의힘이 현역 의원을 물갈이했다고는 하지만, 현역 의원들이 빠진 자리에 알맞은 인물이 들어왔는지 봐야 한다. 또 기존 현역 의원이 험지 또는 야당 강세 지역으로 가는 게 인적 쇄신까지 이끈 게 맞는지도 결국 상대 당 후보와 견줘야 비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그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면 묘수지만, 아니라면 꼼수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선 대진표가 나올 때까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이 묘안을 제대로 짠 것”이라며 “공천 전략을 정말 잘 짰다고 보는 건 공천 반발로 인한 탈당이나 제3지대 합류 등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구 재배치 카드를 제시해서 현역 물갈이를 하면서도, 잡음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민주당에서 공천 파동이 크다 보니 반사이익을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지역을 정말 잘 아는 대표격인 사람 대신 지역구 재배치로 다른 지역 현역 의원이 온 건 지역 유권자 입장에서 문제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며 “앞으로 국민의힘이 지역 유권자를 어떻게 설득하고 이들로부터 공감대를 끌어낼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민주당이 공천 파동으로 시끄럽다 보니 그걸 너무 의식한 나머지 분란과 갈등을 없애는 공천만 추구하려는 모습이다. 아마 3월 22일이면 여야 대진표가 전부 완성이 될 텐데, 그땐 유권자 머릿속에 공천 파동은 없다”며 “남은 건 공천이 잘 됐느냐인데, 현역 물갈이로 지칭되는 인적 쇄신을 누가 더 많이 했는지, 그 자리에 역량 부족인 사람이 오지는 않았는지 등을 유권자들은 면밀히 뜯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지역구 재배치는 마땅한 인재가 없어서 ‘현역 돌려막기’로 유권자에게 해석될 여지가 크다. 공천 잡음이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해서 출마 기회를 주는 게 당 결속력 차원에서 낫기 때문에 생각한 차선책”이라며 “다만 공천 결과에 대해서 만큼은 아무리 당 차원에서 자화자찬을 해도, 그걸 보고 판단하고 투표하는 건 결국 국민의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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