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위기의 애플 (上)


지난해 전 세계 기업 중 최초로 시가총액 3조달러를 돌파하며 증시 역사를 새롭게 썼던 애플의 시대가 저무는 걸까. 2007년 출시한 아이폰으로 단숨에 스마트폰 업계 1위로 올라선 뒤 17년간 독점적 지위를 누렸지만, 인공지능(AI)이라는 시장의 큰 물결 속에서 애플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은 초조해하고 있다. 애플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시리야, 애플에 무슨 문제 있어?”…”음, 무슨 말인지 이해 못했어요”



-혁신의 아이콘, ‘시리’에 갇히다

애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AP=뉴시스

# 2008년 애플은 금융위기 여파로 막대한 손실을 내고 파산 위기에 몰린 제너럴모터스(GM) 인수를 진지하게 검토했다. 헐값에 미국 대표 자동차 회사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던 애플 임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아이폰으로 집과 사무실, 자동차를 모두 원격 제어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애플 창업자이자 당시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GM 인수 프로젝트를 일찌감치 폐기해 버렸다.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고 ‘혁신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던 때였지만 자동차로의 사업확장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잡스의 의사 결정은 빨랐고, 애플은 잘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했다.

# 2014년 애플은 또 다시 자동차로 눈을 돌렸다. ‘애플워치’를 출시하고 다음 프로젝트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 때, 시장의 화두는 자율주행 기술이었다. 구글이 자율주행 테스트에 나섰고, 테슬라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잡스 사망 뒤 애플 CEO에 오른 팀 쿡은 자율주행 시장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빅테크 업계 연봉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애플 엔지니어들의 이탈이 늘어나는 것도 골치였다.

그렇게 ‘애플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갑작스런 자동차 사업 추진에 당시 애플 임원들 사이에선 “삼성과 GM 중 어느 쪽과 경쟁해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갔다. 애플은 투자비 100억달러(약 13조원) 이상을 쓰고도 세상이 기대했던 ‘꿈의 자율주행차’를 내놓지 못했다. 결국 애플카 프로젝트는 10년 만인 올 2월 완전 무산됐다.

애플 팀 쿡 최고경영자/사진=블룸버그

글로벌 정보통신(IT) 시장 부동의 1위 기업 애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최근 빅테크 시장을 주도하는 인공지능(AI) 랠리에서 완전히 소외된 데다 10년간 공 들여온 자율주행 전기차 사업까지 접으면서 경영 판단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주력사업도 흔들리고 있다. 애플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이폰이 중국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고, 야심작인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프로’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유럽연합(EU)이 애플의 앱 다운로드와 인앱 결제 방식을 반독점 위반 혐의로 규정하고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악재다. 월가에선 애플 ‘매도’ 보고서가 등장했다. 주가가 계속 빠지면서 ‘공매도 놀이터’라는 굴욕적인 별명까지 얻었다.

◆ ‘AI 랠리’ 놓친 애플…”테슬라 잡으려다 MS에 뒤졌다”

애플은 2011년 AI 음성서비스 ‘시리’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했지만 최근 경쟁 기업들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FPBBNews=뉴스1

시장이 애플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배경의 중심에는 AI 사업이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성장 테마가 AI로 바뀌면서 엔비디아·메타·마이크로소프트(MS) 등 경쟁사들의 랠리가 시작됐는데 애플은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애플카·비전프로 등 파생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느라 시기를 놓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애플은 이렇다 할 AI 사업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애플 주주총회 현장에선 AI 사업 부진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쿡 CEO가 “우리는 수년간 AI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고, 올 하반기 놀랄 만한 결과를 내놓겠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천하의 애플이 실체 없는 변명만 늘어놨다는 비판이 일었다.

보케캐피털파트너스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킴 포러스트는 “애플은 AI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무조건 증명해야 한다”며 “모두가 애플에 AI 스토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아이폰4S에 음성 서비스인 ‘시리’를 탑재했을 때만 해도 애플은 AI 선구자로 통했다. 하지만 잡스가 시리를 세상에 소개한 다음날 사망하면서 애플 내부에서 시리 사업도 갈 길을 잃었다고 전·현직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아이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시리가 아마존의 알렉사나 구글의 어시스턴트 등보다 많이 사용되는 것 같지만 정확성과 유용성 면에서 경쟁 모델보다 한참 뒤처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애플의 엄격한 데이터 프라이버시 정책이 시리를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됐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AI 조직을 키웠지만 시리를 뛰어 넘는 뾰족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애플이 지난달 애플카 프로젝트를 포기하면서 대부분 인적자원을 AI 부문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은 ‘챗GPT’가 촉발한 AI 경쟁에서 더 밀렸다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24를 통해 AI 스마트폰 시장을 선점한 것도 애플을 조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블룸버그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언론들은 “애플이 테슬라를 잡으려다 오픈AI와 손 잡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뒤처진 현실을 직시하고 자동차 사업을 접었다”고 진단했다.

애플과 주요 자동차 기업의 시장 가치 및 수익률 비교

◆ 등돌린 중국, 뺨 때린 유럽…위기 극복할까

애플의 돈줄인 아이폰 판매량도 꺾이는 추세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최신작 아이폰15 시리즈의 첫 4개월 판매량은 아이폰14 대비 200만대 줄었다. 특히 애플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부진이 두드러졌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들어 첫 6주간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감소했다. 중국 내 애플 점유율은 15.7%로 종전 2위에서 4위로 주저 앉았다.

중국 베이징 애플 매장 전경/AFPBBNews=뉴스1

유럽 당국이 반독점 위반 혐의로 애플에 18억4000만유로(약 2조66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가 됐다. 유럽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애플에 앱스토어 수수료를 낮추라는 압력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의 평가도 냉담하다. 지난해 전 세계 기업 중 최초로 시가총액 3조달러(약 3960조원) 고지를 밟았던 애플의 현재 시장 가치는 2조6000억달러(약 3430조원)로 낮아졌다. 투자금이 AI 주도주로 몰리면서 2011년 이후 줄곧 놓치지 않았던 시총 1위 자리도 올 1월 MS에 빼았겼다. 바클레이즈·UBS 등 일부 투자은행(IB)들은 이미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공매도도 쏟아지고 있다. 데이터분석회사 S3파트너스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달 뉴욕 증시에서 공매도 수익이 2번째로 높은 종목이었다.

주요 빅테크 기업의 최근 1년 주가 흐름 비교

애플이 이번 위기를 극복할지를 놓고는 견해가 엇갈린다. 미라마캐피탈의 맥스 바서만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애플은 훌륭한 현금흐름과 대차대조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AI 시대 새로운 리더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웨이브캐피털매니지먼트의 리스 윌리엄스 최고 전략가도 “추진 동력이 부재한 애플이 생성형 AI 시장을 선점한 경쟁자들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반면 멜리우스리서치의 벤 레이츠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AI 전략은 아이폰 이후 가장 중요한 출시가 될 것”이라며 “이는 오는 2025년 애플의 슈퍼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로젠블랫증권의 바튼 크로켓 선임 애널리스트는 “6월에 열리는 세계개발자회의(WWDC)는 애플을 파괴적인 혁신가 위치로 되돌려 놓을 역사적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변심 아픈데, 앱스토어는 뺨맞아…애플의 ‘돈줄’ 흔들린다



-애플이 맞은 현실의 도전…아이폰, 앱스토어에 잇따른 악재

지난해 11월 중국 선양에서 한 어린이가 아이폰을 들고 있다./AFPBBNews=뉴스1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스마트 세상의 황제로 군림하던 애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애플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중국에서 토종 업체에 밀려 아이폰 인기가 시들해진 데다 애플워치나 아이패드 인기도 예전 같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서비스 부문의 성장을 이끈 애플 특유의 ‘폐쇄적 생태계’는 유럽의 고강도 규제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애플 실적을 떠받치던 두 기둥이 한꺼번에 위기를 맞으면서 투자자들의 우려도 커진다.


‘중국인 아이폰 사랑’은 옛말…시장 점유율 4위로 추락

애플 실적을 든든히 떠받치던 중국의 ‘애플 앓이’는 옛말이 됐다. 중국 소비자들이 빠르게 기술 격차를 따라잡는 토종 업체들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애플은 이례적으로 새해 가격 할인까지 나섰지만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첫 6주 동안 중국에서 아이폰 판매량은 전년 대비 4분의 1가량 쪼그라들었다.

빈틈을 파고든 건 토종 업체들이다. 같은 기간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첨단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 메이트60의 애국 소비 물결을 타고 판매량이 64% 폭증했다. 보급형 스마트폰 강자인 비보는 전년 대비 15% 줄었으나 동기간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팔았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전년 대비 7% 위축됐음을 감안해도 경쟁사 대비 아이폰의 판매 부진이 크게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장멩멩 애널리스트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의 부활뿐 아니라 오포, 비보, 샤오미 등의 공격적인 가격 책정이 애플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패권 전쟁을 벌이는 중국 정부가 관공서나 공공기업 등에서 아이폰 사용을 제한하는 것 역시 애플엔 부담이다.

중국 시장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사진=블룸버그

그 결과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1년 사이 19%에서 15.7%로 떨어지면서 4위까지 추락했다. 비보가 17.6%로 1위를 지켰고, 화웨이는 점유율이 16.5%까지 급상승해 2위를 꿰찼다.

애플은 중국 태블릿PC 시장에서도 점유율이 떨어지면서 화웨이에 왕좌를 내줬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4분기(10~12월) 시장 점유율 30.8%로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은 30.5%로 2위다.

중국의 수요 둔화는 당장 애플 실적에 충격을 던질 수 있다. 중국은 애플 전체 매출의 약 20%를 기여하는 핵심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미 애플은 지난해 4분기 중국 매출이 전년 대비 13% 감소하며 기대 이하 성적을 냈다.

전문가들은 올해 1분기에도 중국 시장 부진 등을 이유로 올해 1분기 애플의 매출이 전년 대비 4% 감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애플 낙관론자로 유명한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조차 최근 애플 전망을 “호러 쇼”에 비교하면서 중국 수요가 “무척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2020년 10월 23일 중국 상하이 앱스토어 앞에 아이폰12를 구입하려는 중국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AFPBBNews=뉴스1

◆ 유럽 빅테크 규제에 ‘애플 정원’ 위기…뿌리째 흔들리는 수익 모델

7일부터 시작된 유럽의 초강력 빅테크 규제는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walled-garden)’으로 묘사되는 애플의 비즈니스 사업 모델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애플은 지금까지 하드웨어부터 운영체제(OS), 애플리케이션까지 독자 생태계를 고집해왔다.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앱을 다운받고 애플 결제 시스템만 이용하고 애플 제품끼리만 호환되도록 하는 식이다. “소비자를 우리 생태계에 가둬야 한다”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기조를 따른 것이다.

2023년 4분기(10~12월) 애플 매출 구성/사진=블룸버그

애플의 폐쇄성은 과거 한계로 여겨졌으나 아이폰이 스마트폰의 대명사가 되고 애플 제품에 대한 팬덤이 확장하면서 실적 효자로 거듭났다. 애플이 인앱 결제에 부과하던 최대 30%의 수수료는 매년 서비스 부문(앱스토어 외 애플뮤직, 아이클라우드 등 포함)에서 수백억달러의 수익으로 이어졌다. 원가가 적어 이익률이 70% 정도로 실물 제품에 비해 2배가량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공급망 차질로 인한 하드웨어 매출 부진을 상쇄한 것도 서비스 부문이었다.

그러나 애플의 정원을 둘러싼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유럽은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해 앱 다운로드와 인앱 결제 등의 개방을 의무화하는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했으며, 법 시행 사흘 전엔 애플을 반독점 위반 혐의로 한국 돈 2조66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때렸다. 당초 예상했던 5억유로(7200억원)의 3배가 넘는 금액으로 강력한 규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애플은 울며 겨자 먹기로 유럽에서 앱 다운로드와 인앱 결제를 외부에 개방한 상태다. 유럽은 애플의 수수료 수입 가운데 7%를 차지하는 정도지만, 현재 한국과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규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단 점에서 유럽의 사례가 본보기가 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싱크탱크인 유럽개혁센터의 잭 마이어스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유럽 규제는 애플의 근본 철학, 보안에 대한 접근 방식,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을 건드린 것”이라면서 “개방성이 있는 구글과 달리 애플은 이번 규제에서 기회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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