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공무원 악성민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악성민원 희생자 추모 다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민원 시달리며 누리꾼들 공격까지 받은 김포시 공무원이 사망하면서 전국 지자체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김포시 공무원 사망 이전에도 전국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 非一非再)일어났다. 김포시청 공무원 사망사건 이전에도 공무원들이 악성 민원으로 목숨을 잃는 일은 반복됐다. 지난해 8월 경기 화성에서 민원인 고성에 응대하던 공무원이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했다. 지난해 5월 고용노동부 신입 근로감독관이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원인이 흉기로 공무원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지난달 경기 파주에서 민원인이 망치로 공무원의 머리를 수차례 가격했고, 지난해 5월에는 부산에서 민원인에게 머리와 얼굴을 맞은 공무원이 기절했다. 지난 1월 청주시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기초생활수급비가 적게 나왔다’는 이유로 사회복지 공무원이 민원인으로부터 욕설과 협박을 당했다. 이 민원인은 이를 말리는 다른 민원인을 밀치기까지 해 결국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았다. 속초에서는 영랑동 주민센터 직원이 폭행을 당했다. 혼자서 1만건 이상의 행정심판을 청구한 악성 민원인이 법의 제재를 받은 사례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권리 구제와 관련이 없는 악성 행정심판을 계속 청구해 업무를 방해한 청구인을 형사 고소했다고 18일 밝혔다. 중앙행심위에 따르면 A씨는 지난 3년간 특정인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대부분인 행정심판을 1만건 이상 청구했다.

#2.민원실 공무원에게 친절만을 강조해온 지자체장은 이번에 비장한 각오로 나섰다. 친절은 기본이지만 악성민원인은 친절호의는 당연한 권리로 해석한다. 이런 정신병자 같은 악성민원인에게 친절은 백약이 무효다. 김포시 공무원 사망사건은 온라인도 한 몫을 했다. 정확한 사실도 인지하지않은채 부화뇌동하면서 죽음으로 내몰았다. 사망사건은 이렇다. 김포시 9급 공무원인 A(39) 씨는 지난 5일 오후 3시 40분 인천시 서구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지난달 29일 김포 도로에서 진행된 포트홀(도로 파임) 보수 공사와 관련해 차량 정체가 빚어지자 항의성 민원을 접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일 온라인 카페에서는 공사를 승인한 주무관이 A 씨라며 그의 실명과 소속 부서, 직통 전화번호를 공개한 댓글이 수차례 반복적으로 게시됐다. 이후 A 씨를 비난하는 글과 함께 항의성 민원전화가 빗발쳤다. 또 카페에서는 A 씨를 공격하는 글이 잇따랐다. 민원인들은 새벽에도 김포시청으로 항의 전화를 했고, A 씨는 휴대전화로 당직 근무자의 연락을 받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누리꾼들의 주장과 달리 김포시는 “고인은 새벽까지 공사 현장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이후 A 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해당 카페 운영자는 “안타까운 소식에 저희 카페가 관련돼 있다는 점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이 밀려온다”며 “단순한 민원성 게시물로 판단해 신상 털기와 마녀사냥식 댓글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김병수 김포시장은 경찰에 고발했다.

녹음기능을 탑재한 속초시청 공무원증 케이스[속초시 제공]

#3.김포시 공무원 사망사건후 지자체 보도자료에는 갑자기 공무원 보호책이 늘어났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19일 자신의 SNS를 통해 “공무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최 시장은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김포시 공무원의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애도 기간을 갖고 있다. 그는 “공무원에 대한 폭력과 인권침해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소름 돋는 묘수를 던졌다. 악성민원인은 바로 고발조치된다. 증거자료를 담긴 녹음기를 제출한다 악성 민원인의 폭언 및 협박으로부터 민원담당자를 보호하기 위해 녹음기능을 탑재한 공무원증 케이스를 시청 종합민원실과 동주민센터 8곳에 52개를 배부했다. 녹음기능이 있는 케이스에 공무원증을 넣어 목에 거는 형태로 뒷면의 버튼을 누르면 최장 6시간 동안 녹음이 가능하다. 녹음기능은 폭언·협박 등 위법 상황 발생 시에만 사용되며, 녹음파일은 민형사상 증거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 시장은 악성민원인에게 더 이상 선처는 없다고 각인시키겠다고 했다.

#4.수년전부터 정부나 지자체는 폭언·협박·기물파손·성희롱 등 불법 부당한 형태의 악성 민원이 확대되고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청원경찰 배치나 경찰 모의합동훈련을 안한 지자체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법자체에서 강력한 시그널을 주지못했기 때문이다. 현장 공무원이 알아서 악성 민원을 책임져야 하는 관행과 구조 안에선 아무리 새 매뉴얼을 내놔도 ‘백약이 무효’라는 얘기다.이젠 악성 민원에 대한 기관 차원의 대응을 의무화하고 미이행 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조항이 필요하다. 김포시 공무원 사망 이후 행안부는 내부 특별팀(TF)을 구성하고 ‘민원인의 위법행위에 대한 법적 대응 요령’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하지만 어떤 것을 악성 민원이라고 할 수 있는지 구별할 기준조차 없는 상황이라 기준을 정할 필요가 시급하다. 일선 공무원이 악성 민원을 책임지게 하는 것이 아닌,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전담 부서 등의 설치에 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5.인사혁신처가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원 1만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감정노동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참아서 해결한다’는 응답이 46.2%에 달했다. 심지어 감정노동으로 질병이 발현되는 경우에도 10명 중 6명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갑질 민원의 예로 ‘장기간 응대, 무리한 요구로 업무방해'(31.7%), ‘폭언·협박'(29.3%), ‘보복성 행정 제보·신고'(20.5%) 등이 꼽혔다. 지자체 마다 힐링캠프를 만들어 공무원을 격려하고있으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악성민원은 민원이 아닌 범죄다. 공무원들이 갑질 민원인 등으로 이들이 어렵게 임용된 공직을 버리고 떠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악성민원인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도록 국민에게 각인시켜야한다. 악성민원은 공무원에 대한 범죄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3월 개정된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민원처리법)에 근거해 각종 민원 대응 절차와 지원 안내 등이 담긴 매뉴얼이 이달 안에 발간할 예정이다. 매뉴얼은 폭언이나 폭행하는 민원인을 만났을 경우 공무원과 관련 부서, 목격자 등이 해야 할 일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김포시 공무원 사고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인재(人災)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악성 민원인에게 이번기회에 반드시 철퇴를 내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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