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정부가 늘어난 의과대학 입학정원 2000명의 대학별 배분을 확정지었다. 당분간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은 더 첨예해질 전망이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처우 개선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의료계 달래기에 나섰다. 입시업계에선 서울 수도권과 지방권 모두 의대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올해 대학 합격선도 변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N수생·직장인 등 ‘너도나도’ 의대 도전=21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의과대학 학생정원 배정위원회’ 논의를 거쳐 정원 증원분 2000명을 지역별·대학별로 배분했다. 우선 비수도권 27개 대학에는 1639명을 증원하기로 했다. 전체 증원분의 82%다. 비수도권 의대 정원은 현재 2023명으로 전국 의대 정원(3058명)의 66.2% 수준인데, 내년부터는 3662명으로 72.4% 수준까지 높아진다.

‘의대 열풍’은 더 심화될 전망이다. 2000명이 증원되면 의대 총 입학 정원은 5058명이 된다. 의대 진학을 위해 ‘N수’까지 마다하지 않는 학생들과 직장인이 늘면서 그렇지 않아도 강력했던 의대 쏠림 현상에 가속도가 붙는 것이다.

먼저 최상위권 대학의 이공계 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의대를 가기 위해 반수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 수 있다. 이미 입시에서 최상위권의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에 진학했어도 평소보다 높아진 의대 진학 가능성에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높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최상위권 공대 재학생은 의대를 가려다가 ‘한 끗 차이’로 못 간 경우가 많아, 목표를 다시 의대 진학으로 결심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학년도 입시를 준비하는 최상위권 자연계열 수험생도 자연계보다 의대를 선호할 수 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 소장은 “증원 소식이 나올 때부터 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의대 입시 준비에 열풍이 불었던 것을 고려하면 증원 규모가 2000명으로 확정된 이상 의대 열풍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인해 이공계 기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의대 열풍에 가세하는 직장인들도 크게 늘 수 있다. 사교육업체 메가스터디교육은 직장인들의 의대 입시 관련 문의가 쏟아지자 지난 18일 서초 의약학전문관에 의대 전문 직장인 대상 야간특별반인 ‘수능 ALL in 반’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여기에 지방권 의대생들이 수도권인 경인권 의대 등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소장은 “최근 지방 의대에서 휴학하고 또 다른 상위권 의대로 반수를 해야겠다는 문의가 꽤 있는 것 같다”며 “이들을 포함해 의대 진학 ‘반수 열풍’은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수도권에 해당하는 경인권의 경우 ‘지역인재전형’이 없어 비수도권에 비해 지원 조건의 문턱이 낮기 때문에 수험생들의 도전이 본격화할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의정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20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

▶의정 갈등 ‘악화일로’=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을 확정하면서 그간 대학 병원에서 전공의가 이탈한 자리를 메꿔왔던 의대 교수들 사직 규모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받는다. 그간 사직 계획을 공식화하지 않았던 교수 단체인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도 정부 발표 직후, 집단 사직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모았다.

전의교협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과 지난 20일 오후 온라인 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결의했다. 의대 증원과 관련 이들 3개 단체가 공식적으로 모인 것은 처음이다.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까지 현실화할 시 환자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1300여명에 달하는 규모로 이탈하면서 이들의 빈 자리는 교수들이 채우고 있다.

정부의 의료계 달래기 역시 본격화 할 전망이다. 이미 의대 정원을 대학별로 배분해 사실상 의대정원 2000명 확대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임을 강조하면서, 근로환경 개선 등 유인책을 내세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을 다시 복귀시키겠다는 의지다.

이미 정부는 이달부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에게 매달 100만원씩 수련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분만, 응급 등 다른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들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대상 범위를 조속히 확대할 계획이다. 또 올해 상반기에는 전공의 연속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80시간인 일주일 최대 근무시간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다.

▶지역인재전형 60%…합격선 소폭 내려갈 것=의대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면 올해 입시부터 의대를 비롯해 최상위권 대학 이공계열, 그리고 주요 대학의 합격선에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025학년도 입시가 8개월 정도 남았는데, 의대 정원이 2000명으로 늘어나면 고3을 포함한 재학생들의 동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상위권 수험생의 의대 쏠림으로 일반 학과를 포함해 주요 대학의 대부분 합격선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대 합격선은 비수도권에서 ‘지역인재전형 60% 이상 선발’을 적용할 경우 일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남 소장은 “비수도권 대학이 1639명 증원되고 지역인재전형도 60%로 확대되면서 합격선이 어느 정도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

임 대표는 “지방권 의대 수능 수학 1등급만으로 지역인재전형 인원을 채우기 힘들 수도 있다”며 “상황에 따라서 수도권과 지방권의 상당한 점수 격차가 예상된다”고 봤다.

2023학년도 입시에서 비수도권의 고3 학생 수학 1등급 수는 3346명이었다. 그런데 비수도권 전체 의대 정원은 기존의 2023명에서 3662명으로 늘어났다. 수학 1등급을 받은 전체 고3 학생 수로도 비수도권 의대 총정원을 채우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내 의대의 경우 증원이 아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격선이 변하지 않고, 경인권 의대는 지원이 급증해 합격선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의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 일반학과의 합격선이 내려가면 일부 수험생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 증원분 배정안을 공식 발표한 뒤로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은 전날 오후 8시 온라인 회의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배정 결과에 대해 논의를 거치고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오늘 오후 전공의 처우 개선 논의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열어 전공의 달래기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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