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원·달러 환율이 1370원을 돌파했다. 미국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위축된 가운데, 이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시장에 완화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 달러 강세 현상이 심화됐다.

이날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1364.1원)보다 11.3원 오른 1375.4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연중 최고치다.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마비됐던 지난 2022년 11월 10일(1377.5원) 이후 1년 5개월 만에 가장 높다.

환율은 역외 환율을 반영해 전 거래일 종가보다 3.6원 오른 1367.7원에 개장했다. 이후 1367원선에서 움직이다가, 한은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가 시작된 오전 11시 무렵 상승 폭이 확대됐다. 간담회가 마무리된 후인 오후 12시에는 1370원을 돌파했고, 이후 쭉 1375.5원까지 올랐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한은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3.5%로 유지했다. 작년 2·4·5·7·8·10·11월과 올해 1·2월에 이어 이번까지 10번 연속 금리를 묶어둔 것이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1년 2개월째 같은 수준을 유지하게 됐다.

금리는 동결됐지만, 기자간담회에서는 비둘기파(완화 선호)적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지금은 깜빡이(금리 인하 신호)를 켠 것은 아니고 켤까 말까 고민하는 상황”이라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을 보고 깜빡이를 켤지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그간 이 총재가 누차 “충분히 장기간 긴축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던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이 총재는 심지어 미국보다 금리를 먼저 내릴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미국이 작년부터 피벗(통화정책 전환·pivot) 신호를 줘서 통화정책 탈(脫)동조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과거 미국의 통화정책을 굉장히 많이 봤다면, 지금은 소비자물가를 보면서 미국보다 (금리 인하를)먼저하거나 후에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면 현재 2%인 한·미 금리차(상단기준, 미국 5.5%·한국 3.5%)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강해져 원·달러 환율이 오른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늘 미국보다 먼저 인하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 건 굉장히 리스크(위험)를 안고 얘기한 것”이라면서 “매파(긴축 선호)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비둘기에 무게가 실렸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앞으로도 원·달러 환율은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고용·물가 등 경제지표가 탄탄한 모습을 보이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위축되고 있어서다. 10일(현지 시각)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5% 오르면서 시장 예상치(3.4%)를 상회했다. 지난달 미국의 비농업 고용자수도 전월대비 30만3000명 오르면서 월가 예상치인 21만2000명을 크게 상회했다.

한은은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요시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은 주변국 영향이 크다”면서 “우리나라만 (통화가)절하되는 게 아니라 달러 강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환율이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 대비 절하되는 지 보고있다”고 했다. 그는 “펀더멘탈에 비해 과도하게 쏠릴 시에는 시장안정화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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