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테크노밸리./사진=뉴스1

이직이 잦고 근속연수가 짧아 노동조합 설립이 쉽지 않은 IT업계 내 노조 열풍이 불고 있다. ‘꿈의 직장’으로 불렸던 IT업계에 경기 불황으로 인원 감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업계 종사자들이 노조 결성을 통해 공동 대응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IT업계에 권고사직·정리해고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최대 부동산 플랫폼 ‘직방’은 올해 초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진행했다. 권고사직을 당한 직원은 총 인원의 1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팀 리더와의 개별 면담 후 사직을 권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직방에는 400여명의 직원이 재직 중이다.

앞서 직방은 공격적으로 인력 확보에 나섰다. 직방은 2021년 개발직군 대규모 채용을 통해 신입 개발자에게 초봉 6000만원, 경력 개발자에게는 종전 직장의 연봉 1년 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최대 1억원 인센티브 명목으로 각각 지급했다. 재직자 연봉도 2000만원씩 올리는 등 인력 확보에 파격적인 투자를 강행했다.

그러나 부동산 거래시장이 침체되고 대규모 개발자 채용 등 투자로 수익성이 악화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직방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전년(82억원)보다 452% 증가한 371억원이다. 지난해 직방의 판매·관리비 지출은 929억원으로 전년 571억원보다 크게 늘어났다. 특히 급여 지출이 234억원으로 2021년(104억원) 대비 2배 이상 올랐다.

이와 관련, 직방 관계자는 “감원 규모를 대대적으로 정해놓고 진행한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는 아니었다”며 “인사평가 시즌을 거치다 보면 발생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으로 평가에 따라서 회사와 얘기를 나누다가 퇴사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빅테크 기업인 네이버도 자회사를 중심으로 인력 감축이 이뤄지고 있다. 네이버의 계열사 ‘라인게임즈’는 지난 3월 전체 직원 약 200명 중 10%에 해당하는 20~30명의 인력을 대상으로 권고 사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의 북미 웹소설 자회사 왓패드도 지난 3월 “전체 직원 267명 중 약16%인 42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 많던 IT업계, 이젠 감원 열풍


IT업계 내 고용 불안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해고·권고사직·실업급여·구조조정·희망퇴직·명예퇴직 등 고용 불안 키워드의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3.3배 증가했다. 특히 권고사직 검색량은 9.3배 늘었다. 특히 IT업계 재직자의 고용 불안 키워드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5.9배 늘었다. 게임 업계에서도 7.3배 증가했다.

이에 노조 결성을 통해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엔씨소프트의 노조 ‘우주정복’이 설립됐다. 게임업계에서 노조가 설립된 것은 다섯 번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은 설립 취지에 대해 “직원들은 권고사직·대기발령 등으로 ‘한시적 정규직’처럼 취급받고 있다”고 밝혔다.

구글의 구글코리아에도 같은 달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구글코리아지부가 설립됐다. 구글은 글로벌 단위로 인원을 감축하고 있다. 앞서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지난 1월 비용 절감을 위해 전체 직원의 약 6%인 1만2000명을 감원하겠다고 공지했다. 이에 구글코리아는 지난 3월 일부 직원들에게 권고사직 수준의 직무폐지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IT업계에서 노조 결성이 잇따르는 현상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IT업계에서는 근로자들의 이직이 잦고 근속연수가 짧다. 프로젝트 단위로 사업을 진행하고 성과주의 중심이며 ‘몸값’이 높지만 일자리는 많아서 노조 설립이 쉽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었다.

8년째 IT업계에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30대 남성 조모씨는 “코로나19 때는 IT회사들이 개발자들에게 연봉을 인상해주며 너도나도 데려가려고 하는 등 개발직군 이직이 활발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회사들이 인력을 줄이려는 추세고, 이직하는 동료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IT업계 노조 설립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나뉜다. 손승우 중앙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일부 기업이 주52시간 근무제에 따르지 않고 개발자들에게 과도하게 (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물론 지나치게 노사 간에 갈등이 심해져서 회사의 발전 등이 저해되면 안 되겠지만 큰 틀에서는 노조가 생기는 현상이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다.

반면 정연승 단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불안정한 업종이기 때문에 종업원들이 안정감과 소속감이 필요해 노조를 원하는 정서적인 면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IT업종은 변화가 빠르고 불확실성도 크기 때문에 경영 전략 또는 인사 직원 채용 등에 있어 굉장히 유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적으로 봐도 미국 등 선진국에서 IT업종에 노조가 활성화돼 있는 사례는 별로 없다”며 “글로벌 경쟁력 등 여러 측면에 봤을 때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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