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채널A '사건 상황실' 방송화면
/사진=채널A ‘사건 상황실’ 방송화면

1975년 6월2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혜화동)에서 한 여성이 실종됐다. 여성의 아이들은 그날 밤 “뭔가 태운 냄새와 정육점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서 났다”고 증언했다. 이후 무참히 토막 당한 그 여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범인은 사건 다음 날도 태연히 거리를 산책했던 남편이었다.

◇환경미화원이 발견한 사람 뼈…톱으로 잘려진 뼈였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한 동네 골목에서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봉투를 수거하다가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뼈를 발견했다. 경착은 국과수에 조직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 결과 훼손된 사체는 톱으로 잘려진 사람의 뼈였다. 당시 이팔국의 아내 이숙자(사건 당시 43세)의 실종 신고 6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경찰은 이숙자의 남편 이팔국(사건 당시 47세)과 이팔국의 전처 소생 및 의붓자식들을 모두 소환해 대질심문을 벌였다. 아이들은 사건이 벌어진 20일 새벽에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고 다음 날 아침 피비린내를 맡았다며 “아버지가 ‘벌레가 끓어 그런다’며 소독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토막 난 뼈의 조직이 피해자 이숙자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팔국은 사건 발생 10일만에 검거됐다.

◇전과자 이팔국, 아내 돈 노리고 몰래 혼인신고도…우발적 살인 후 잔혹한 토막 사체 유기

/사진=채널A '사건 상황실' 방송화면
/사진=채널A ‘사건 상황실’ 방송화면

이팔국은 1958년 전처와 결혼해 4남매를 뒀다. 대학원 졸업생으로 당시로는 엘리트였다. 그는 1969년 전처가 사망한 후 가정부 성폭행, 사기, 폭력 등 성적으로 연관된 범죄를 저질렀다.

1973년 9월 피해자 이숙자를 만난 이팔국은 동거를 시작했다. 이팔국은 재혼 전 시장에서 푸줏간을 했으나 살인사건을 벌이기 전까지 실직 상태였다. 이 때문에 이숙자가 다방과 양장점을 운영하며 4남매와 두 사람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이팔국은 이숙자의 재산을 노리고 동의 없이 몰래 혼인신고까지 하기도 했다. 다툼이 늘자 이숙자는 이혼을 요구했고 이팔국은 부부 싸움을 벌이다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사진=채널A '사건 상황실' 방송화면
/사진=채널A ‘사건 상황실’ 방송화면

아내 살해 후 이팔국은 자신의 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아내의 사체를 자택 목욕탕에서 수십 조각으로 토막 내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이팔국은 피해자의 피부 조각을 머리카락과 태웠다. 눈알과 내장은 잘게 다졌고 살점은 토막 내 하수구에 버렸다. 근육을 비롯한 살덩이를 김치와 함께 항아리에 묻기도 했다. 두개골을 비롯한 뼈는 토막 낸 후 아령으로 가루로 만들어 연탄재와 함께 하수구에 흘려보냈다. 새벽 1시부터 6시까지 밤새도록 잔혹한 행각을 벌였다.

이팔국은 온 집에 소독약을 뿌려 탄내를 없앴다. 그날 밤에는 연탄재에 섞은 뼛가루를 비닐봉지에 담고 시멘트 부대로 싸 집에서 1km 가량 떨어진 페인트 상회 옆의 한 쓰레기 하치장에 버렸다. 그다음 날 새벽에는 김칫독에 묻어둔 근육 토막을 양동이에 담아 성균관대학교 옆 동네 쓰레기장에 버렸다.

이팔국은 이 같은 끔찍한 일을 벌이고도 태연히 산책을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사형 선고’ 받자 심신상실 주장하며 항소…사건 발생 2년 6개월만에 처형

/사진=채널A '사건 상황실' 방송화면
/사진=채널A ‘사건 상황실’ 방송화면

잔혹한 살인마는 검거 1주일 뒤 현장 검증에서 피해자를 목 조르고 시체를 분해하는 과정을 냉정하게 재연했다. 현장에 몰린 50여명의 주민들은 “저 놈 죽여라”라고 외쳤다. 사체 처리 과정을 받아 적던 사건 담당 형사는 몸서리를 치고 펜을 내동댕이치기도 했다고.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 8부 심훈종 재판장은 1심에서 살인 및 사체모독죄를 적용해서 이팔국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우발적 살인이었지만 뒤처리가 매우 극악무도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팔국은 180cm 장신에 합기도 유도 태권도를 합쳐 12단을 보유하기도 했다. 그런 이팔국은 당시 변호인을 통해 심신상실 상태, 정신착란증 등을 주장하며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팔국 측의 항소 및 상고는 2심 3심 모두 기각당했다. 사형 전날까지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던 이팔국은 결국 사건 발생 2년 6개월이 지난 1977년 11월 처형됐다. 이팔국은 죽는 순간까지 “내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살인마가 아님을 전달해 달라”라고 말하며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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