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상태에서 해부하거나 아니면 페스트균이나 탄저균을 넣어서 인간이 어떻게 인체에 손상이 가는가에 대해서 현장에서 파악하거나 아니면 동상이 걸렸는데 실제로 그 강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포로들을 상대로 해서 가장 잔혹한 전쟁 범죄를 자행한 거죠. 그 주요 부대가 731부대입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1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인간을 상태로 한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은 일본군 731부대의 실체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이번에 731부대 명단이 최초로 공개되면서 당시의 악행이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양 교수는 “우리도 이런 만주 땅에서 항일 투쟁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포로가 됐던 조선인들, 특히 다수의 중국인들 그리고 소련군 포로들을 상대로 해서 그 사람들한테 대해서 인체 실험이라는 그런 악랄한 그런 것을 자행을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양 교수는 “인권이라는 개념은 없는 거죠. 그냥 인간이 아닌 것이고 하나의 그냥 생물 또는 일종의 몰모트에 불과한 거예요. 그런 식으로 이런 전쟁 범죄를 자행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문제고 그것이 지금까지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 자체도 더욱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른바 마루타 희생자는 대략 3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 731부대 명단과 관련한 공식 문서는 일본 대학의 연구원이 발견했다.

양 교수는 “원래는 문서가 미국이 가져갔다가 그 문서를 보내준 겁니다. 보내줘서 후생성에서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국립공문서관으로 넘겼고 그게 보관이 되어 오다가 일본 대학의 연구원이 마스노 세이아라는 분인데 이분이 그걸 발굴해서 실제적으로 그걸 뉴스로 만든 것”이라며 “조직의 총사령관, 그다음에 군우들 명단, 계급, 역할 이런 것까지 전부 다 포함돼서 구체적인 명단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조금씩 자료는 있었는데 구체적인 자료로 돼서 완전하게 명단하고 역할, 직책까지, 계급까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부분은 731부대의 책임 당사자들이 훗날 일본에서 잘 살았다는 점이다. 양 교수는 “실제로 가담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교토대학 의대 교수가 다시 됐고 유명한 제약회사의 CEO들도 다 됐다”고 말했다. 이런 게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이 패전을 앞두고 문제의 자료를 폐기했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19)45년에 패전이 다가오니까 그 자료를 다 소각한 거죠. 심지어 그 건물조차 폭발을 했어요”라면서 “그러니까 전쟁 범죄에 대한 증거를 전부 다 은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의학 자료를 미국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이런 행위가 가능했다.

양 교수는 “의학 자료를 전부 다 접수하고 나서는 면죄부를 준 겁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전범에 대한 처단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죠. 물론 중국이나 소련에서는 이루어졌습니다마는 중요 자료는 전부 다 미국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731부대 가담자는) 한 3000명 정도가 된다. 주력들은 교토대학, 도쿄대학이 많았고 그 사람들은 나중에 돌아가 가지고 교수가 됐거든요. 그리고 주로 많은 그런 731부대들이 돌아와서 부대원 중에서 제약회사 들어가거나 아니면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제약회사 임원들이 됐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731부대 관련 문서가) 국립공문서관, 일본 내에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문서라는 것은 저도 그 책자를 봤는데 고급 기밀문서라고 써져 있거든요. 군사기밀이라고. 그런데 그런 내용이 담긴 많은 서류들이 국립공문서관에 다 묻혀있어요. 사실 그걸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지고 하는 것은 재일학자 아니면 대학교수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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