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롱도르 수상때의 웨아. 라이베리아 대통령인 현재 모습./게티이미지코리아

[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AS모나코를 거쳐 파리 생제르맹에 입단했다. 그리고 AC밀란으로 이적 5년간 세리에 A에서 뛰었다. 1995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유럽과 남미출신 선수를 제외한 선수로 최초이다. 아직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발롱도르 뿐아니다. 1995년 그가 받은 상은 FIFA 올해의 선수,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ESM 올해의 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AC 밀란에서 5년 동안 두 번의 세리에 A 타이틀을 획득한 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었고 2003년 18년간의 프로 생활을 접고 축구화를 벗었다.

이 정도의 화려한 이력을 가진 아프리카 출신의 선수라면 축구팬이라면 금세 누구인지 알 것이다. 바로 아프리카가 낳은 최고의 축구 선수인 조지 웨아이다. 라이베리아 출신의 공격수인 그는 현재 조국의 대통령으로 재직중이다.

영국 더 선은 최근 웨아가 정치에 입문하기전에 축구계에서 놀라운 경력을 쌓았다. 지금은 대통령 재선에 도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웨아는 AC밀란에서 임대로 첼시를 유니폼을 입은 후 데뷔전인 토트넘 전에서 골을 넣으며 첼시팬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다. FA컵 주역이 되기도 했다.

첼시 이후 웨아는 맨체스터 시티 유니폼을 입었다. 임대가 아니라 당당히 주장 3만 파운드를 받고 2년간 계약했다. 2000년 3만 파운드는 거금이었다.

그러나 웨아는 당시 맨체스터 시티 감독인 조 로일이 자신을 후보로 벤치에 앉히는 일이 많아지자 감독에게 불만을 폭발했다. 그리고 팀을 스스로 떠나버리기도 했다. 이후 마르세유 유니폼을 입은 후 아랍에미리트의 알자지라로 이적해 은퇴했다. 2003년이었다.

2년후 웨아는 조국으로 돌아가 정계에 진출했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첫 번째 도전에 고배를 마셨던 웨아는 10년동안 두 번 낙선의 아픔을 맛본 후 상원의원에 이어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 38.4%의 득표로 결선 투표에 나선 후 60%의 득표율로 승리, 대통령 선거 도전 12년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더 선은 이제 위아가 재선에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오는 11월 7일이 결선투표날이다. 축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아가 재선에 성공할지 귀취가 주목된다고 언론은 전했다. 선수시절 강단있는 모습이었던 위아는 대통령에 취임했어도 축구 선수 시절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한편 위아의 아들인 티머시 웨아는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뛰었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현재 이탈리아 세리에 A 유벤투스에서 뛰고 있다.

[선수시절의 조지 웨아. 축구 선수 중 가장 성공한 정치인이다. 라이베리아 대통령을 맡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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