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골키퍼 신의손(사리체프) / 대한축구협회(KFA) 공식 홈페이지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첫 출전한 타지키스탄이 우리에게 친숙한 파울루 벤투 감독의 아랍에미리트(UAE)를 꺾고 8강에 오르는 돌풍을 이어가면서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국명도 생소한 타지키스탄과 한국은 축구라는 매개체를 두고 접점이 있다. 한국이 탈아시아급 축구 강국으로 올라선 데는 타지키스탄 출신 한 축구선수의 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해당 축구선수는 1990년대 한국 축구계를 제패했던 전설의 골키퍼 신의손(64·발레리 사리체프)이다.

사리체프는 K리그 역대 최다우승팀 일화 천마의 골키퍼였다. 일화는 현 성남FC의 전신으로 1989년 창단됐다.

타지키스탄 출신인 사리체프는 1992년 일화에 합류했다. 일화는 사리체프의 가세 이후 처음으로 승리가 패배보다 많은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이어진 세 시즌에서 연속으로 우승했다. 사리체프는 일화가 3연패를 하는 동안 모두 0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 경기당 1골을 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사리체프의 활약은 K리그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골키퍼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의 등장 이전에는 한국 축구계에서 골키퍼는 단지 필드 플레이어에서 밀려난 키 큰 선수들이 보는 포지션이었다.

사리체프의 자극을 받은 다른 팀들은 경쟁적으로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내 골키퍼들의 입지를 보호해야 국제무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셌고, 결국 프로축구연맹은 1999년 외국인 골키퍼 출전을 아예 금지했다.

당연히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선수는 사리체프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보이던 그는 더 이상 선수로 뛸 수 없게 됐다.

당시 골키퍼 문제에 골머리를 앓으며 사리체프를 골키퍼 코치로 부른 안양LG(현 FC서울)의 조광래 감독은 묘안을 찾아냈다. 사리체프를 귀화시켜 선수로 다시 뛰게 하는 것. 사리체프는 그의 별명이었던 ‘신의손’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이 됐다.

그는 최초의 귀화 축구선수로서 또 하나의 역사를 쓰게 됐다. 그는 2000년 그라운드에 복귀했고 안양은 10년 만에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나이 마흔이었다. 신의손은 다음 시즌에도 안양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6년 만에 0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

신의손(오른쪽). / 뉴스1

한국으로 귀화했던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목적 달성 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신의손은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에 남아 한국 축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코치를 맡지 않는 공백기에는 거의 무보수로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골키퍼 클리닉을 열기도 했다.

이런 영향으로 한국 축구계는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중반 치열하게 경쟁한 김병지와 이운재의 시대를 거쳐 꾸준히 좋은 골키퍼들이 나오고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에는 누가 주전이고 서브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마지막까지 경쟁이 치열했다. 결과적으로 신의손은 한국이 아시아 골키퍼 강국으로 서게 만든 기초공사에 참여한 중요한 인물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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