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 용문사

그동안 말 많고 탈 많았던 사찰 문화재 관람료가 2023년 5월 4일 폐지되고 어린이 날인 5월 5일부터 사찰 무료입장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주차료가 폐지된 건 아니며 문화재 관람료 대신 국가에서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사찰 종단에 지불하기로 했다고 하니 그냥 무료는 아닌 셈이다.

어쨌거나 양평 용문사를 가기로 했고 차량을 어딘가 주차를 해야 하니 주차료를 지불하는 건 당연한 것.

넓디넓은 주차장에 주차 후 용문산 관광지를 둘러본 후 아주 여유로운 속도로 사찰을 향해 걷는다.

경기도 양평 용문사(龍門寺) 동영상 1분 35초.

양평 가볼 만한 곳 용문사.

아마도 경기도 절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일주문을 통과하고,

그 오른쪽으로 무언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아마도 기념품 가게이거나 찻집 정도?

주차장에서부터는 대략 1.5km 정도.

겨울임을 알려주듯 나뭇잎 하나 찾아보기 힘든 계절이지만 그 우거짐이 여름 나무그늘의 풍성함을 알려준다.

오르며 보게 된 출렁다리.

이 다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렇게 별생각 없이 그냥 걷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명확하게 찻집임을 알 수 있는 곳.

문 바로 위에 미르(용의 옛말)라는 분홍색 글자와 Coffee & 전통차라고 적혀 있으니 멀리서 바라보며 찻집이라 생각했던 것은 반만 맞는다고 해야 하나? 내 생각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커피를 팔면 ‘카페’ 전통차를 팔면 ‘찻집’라는 공식이 진리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은 회피하고 5~6월이나 9~10월 계곡가에 앉아 살랑이는 골바람을 느끼며 커피 한 잔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며 그런 정도의 여유는 누구에게나 있으니 말이다.

사천왕문이다.

사찰 3문 중에서 일주문에 이은 두 번째 문이다.

내게 묻은 세상 찌꺼기를 떨궈주려나?

아니면 나를 지옥으로 던져 넣으려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지만 현세의 쿠니라는 존재로 화강암 계단을 오르는 중이다.

계단을 다 올라 오른쪽으로는 뭔가 공사가 한창이다.

어느 사찰이건 공사를 하지 않는 사찰은 신도 수가 적은 자그마한 사찰뿐이고 규모가 있거나 유명세가 있는 사찰의 경우라면 어디를 어떻게 고치고 새로 짓든 공사를 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저 너머로는 템플스테이 공간.

범종각 아니고 범종루(梵鐘樓).

형태적으로 단층으로 되어 있을 때는 범종각이고 2층 누각(樓閣)으로 되어 있을 경우엔 범종루라 부르는데 불교에서는 불전 사물인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이 모두 비치되어 있을 경우 범종루, 범종만 비치되어 있을 경우 범종각이라 부른다.

범종루 앞에서 내려다 본,

전국유명사찰 중 하나인 양평 용문사의 사천왕문.

양평 용문사가 전국유명사찰로 이름을 드높인 데에는 불력이 높다거나 성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용문사 은행나무 덕분이라 하겠다. 물론, 기거하시는 스님들 모두 수도하는 분들이므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훌륭하다 믿는다.

하지만 속세에서 살아가는 쿠니의 입장에서는 성스러운 경기도 절이란 생각보다 양평 가볼 만한 곳이라는 관광지란 생각이 더 강하게 각인되어 있고 주변 관광지와 묶어 방문하는 경기도 절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계단 위로 양평 용문사 대웅전(大雄殿). 사찰의 중심이 되는 큰 법당이며 본존불로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불(脇侍佛)로 세워질 경우 대웅전,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협시불로 세우는 경우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한다.

대웅전의 왼쪽을 스치듯 지나쳐 지나면 이정표가 보인다.

미소전, 칠성각, 산령각이라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 첫 번째 만나게 되는 법당.

현재 주변 공사 중인 미소전이다.

양평 용문사의 미소전에는 세 가지의 웃음이란 의미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일체중생을 대자대비로 안아주시는 자비의 미소이며 두 번째는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설법하실 때 꽃비가 내리자 그중 꽃 한 송이를 대주에게 보이셨다. 이에 마하가섭만이 뜻을 알아 미소 짓자 “나의 정법안장과 열반묘심을 가섭에게 전하노라”하셨던 이심전심의 염화미소, 세 번째는 516나한의 미소전 앞에서 기도 참배하는 모든 이들이 미소일색하여 복과 지계가 가득하길 바라는 미소를 말한다고 한다.

산령각(山靈閣)은 일반적으로 산신각(山神閣)이라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다. 한자로만 보면 산신각은 산신을 하나의 신으로 모시는 경우지만 산령각은 산의 혼령이나 정령 정도로 생각하며 신보다는 아래로 규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산신 역시 칠성신처럼 도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불교 전파 이전의 토착신 중 하나였다가 불교가 흡수했다.

칠성각(七星閣).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은 민간에서 건강, 재물, 재능, 풍년 등을 주재하는 신으로 믿어왔는데 불교가 융성해지며 칠성신을 흡수했다. 이때의 칠성신은 사찰의 수호신이었다가 차츰 본래의 신적 믿음을 통해 칠성각에 모셔졌다.

산령각 앞에서 바라보는 전각의 지붕들.

뒤로 불상이 세워져 있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석가모니불인 것을 알 수 있다.

지장전(地藏殿).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있기에 지장전이라 하지만 지장전보다는 보통 명부전(冥府殿)이라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죽음과 연관되는 유명계(저승 세계)를 상징하기에 불자들에게는 슬픔과 두려움의 전각이면서도 찾아갈 일이 생기는 곳이기도 하다.

근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위치한 대웅전 마당을 뒤로하고

금향원(金鄕院)이라 쓰여 있는 현판 아래 황금색의 불상이 놓여 있다.

이는 개금(금칠)을 위한 것으로 현재 양평 용문사에서는 불상에 금칠을 하기 위한 개금불사(改金佛事)를 진행 중에 있다. 신도들이 십시일반 뜻과 돈을 모아 금으로 불상을 씌우는 것이다. 전국유명사찰로 알려진 곳이 아닌 작은 사찰이라면 언제 마칠지 모를 큰 불사라 생각된다.

관음전이 독특하게도 팔각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관음전 내부를 살펴본다.

저 앞의 양평 용문사 금동 관음보살 좌상은 14세기에 제작되어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살아가며 보물을 만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러한 면에서 전국유명사찰을 방문하는 것은 확실히 의미가 있는 일이며 양평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경기도 절 용문사의 관음보살 좌상은 볼에 살이 있는 네모난 얼굴에 어깨 위로 흘러내린 검은색의 머리카락, 구슬 장식 등을 보아 고려 후기에 크게 유행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금동 보살상의 전형적인 요소를 보여준다.

시간을 거슬러 14세기로 돌아가는 경험을 알려주고 있는 관음보살 좌상은 양평 가볼 만한 곳 용문사에 있다.

위 ‘양평 용문사 금동 관음보살 좌상’과 더불어 보물로 지정된 ‘양평 용문사 정지 국사 탑 및 비’를 만나기 위해 계단을 올라 약간 걸어야 한다. 산길이기에 얼마나 걸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포기하시는 분들이 꽤 보이지만 그중 일부는 아주 느리게라도 걷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양평 가볼 만한 곳으로 선택하게 되는 데에는 이렇게 걷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템플 스테이 전각들.

뒤로 보이는 관음전, 지장전, 대웅전 등의 전각들.

그렇게 몇 분 걷지 않았는데 도착하게 된 이곳.

보물로 지정된 경기도 절 용문사 정지 국사 탑 및 비 중에서 탑이 보인다.

정지국사(正智國師)는 나라에서 내린 시호이며 법명이 지천(智泉)인 고려 후기의 선승(禪僧)으로 개풍 영천사의 대장경을 용문사로 옮겨 봉안한 스님이며 이 탑은 지천 스님의 사리를 모신 탑(부도)으로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세워졌다.

정지국사 탑을 바라보며 앉아 쉼을 갖는 것도 좋겠고 탑을 등 뒤로 돌리고 보이는 풍경을 바라봐도 좋을 곳.

개인적으로 참 좋았던 곳이다. 이 한 장소만으로도 양평 가볼 만한 곳이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정지국사 비를 향해 조금 내려간다.

돌계단을 내려설 땐 조금은 조심해야 한다.

다리에 힘이 부족하신 분은 습기가 많은 날에 미끄러짐으로 인해 다칠 수도 있음이다.

저 아래로 보이는 것이 정지국사 비.

정지국사 탑과 마찬가지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정지국사의 삶과 업적을 뒷면에는 후원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비문은 조선 초기 학자인 권근이 지었다. 비의 상부 양쪽 모서리가 접혀 있는 형식은 고려 후기에 등장해 조선 시대에 유행한 형식이라고 한다.

사찰 둘러보기, 보물 둘러보기를 모두 마쳤다.

지금부터는 올라오며 봤던 출렁다리를 향해 내려가는 길.

이 즈음이면 출렁다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도 계곡 걷는다.

아무리 둔해도 그렇지 이젠 출렁다리를 지나도 꽤 지났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위치.

내려오다 보니 일주문을 지나며 봤던 새로 짓는 건물 측면으로 내려왔다.

덕분에 건축신고표시판을 살펴볼 수 있었다.

주용도는 제1종 근린생활시설인 휴게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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