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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박사./제공=대한기독교서회

1970년대 한국 민중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박사가 3일(현지시간) 독일 튀빙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8세.

5일 처치 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192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고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됐다가 영국군 포로가 됐다. 벨기에 포로수용소에서 성경을 접하고 신앙을 갖게 됐고, 종전 후 독일로 돌아가 1952∼1957년 목회 활동을 한 뒤 본대학교와 튀빙겐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며 5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다.

특히 1964년에 나온 대표작 ‘희망의 신학’은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의 무신론적 저작 ‘희망의 원리’에 대한 응답이었다. 고인은 ‘이해’와 ‘신앙’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했다. 중세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성 안셀름(1033∼1109)이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고 한 반면, 고인은 “그러나 나는 또한 믿기 위해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학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믿기 위해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라고도 했다.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한국과도 교류했다. 1975년 서남동(1918∼1984) 당시 한국신학대 교수의 초청으로 방한해 안병무(1922∼1996), 문익환(1918∼1994) 목사 등과 교류하며 독재 정권하의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조용기(1936∼2021) 목사와도 1995년 처음 만난 이후 인연을 이어왔다. 유석성 전 안양대 총장 등 한국인 제자를 여러 명 길러냈고, 서울신학대와 장로회신학대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국내에서 ‘위르겐 몰트만 선집'(대한기독교서회) 17권이 번역·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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