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150년 인류는 ‘올림푸스’에서 신(神)의 경지에 올라 있다. 올림푸스는 태양계 4번째 행성 화성에 건립된 천혜의 요새. 이곳에선 아픔, 배고픔, 슬픔이 없다. 노화나 죽음도 완전히 정복된 곳.

로봇 개 푸들이 애교를 떨고 인공지능(AI) 비서가 뇌파를 감지해 주인을 섬긴다. 스릴은 허용되어도 고통은 용납될 수 없는 천상 낙원에서 주인공 이카루스는 희한한 아픔을 느낀다. 탁월한 AI 주치의도 치료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 무위고(無爲苦)다.

사라진 올림푸스 / 그래비티북스 제공
사라진 올림푸스 / 그래비티북스 제공

독자 입장에서도 올림푸스에서의 삶이 이내 달갑지 않았다. 호기심과 앎에 대한 희구를 저지 당하는 데서 오는 존재의 허무함을 이카루스와 함께하게 된다.

AI가 ‘생각이 고통의 근원’이라고 아무리 가르쳐줘도 이카루스는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그게 호모 사이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니까. 사피엔스 누구나 삶이 원천적으로 ‘고해(苦海)’인 이유일 것이다.

컴퓨터 과학자들이 AI의 위험을 대중들에게 전할 때 흔히 쓰는 설명 장치가 핵무기라면, 작가는 그리스 신화와 현대 소설이라는 인문학적인 도구를 동원해 인류가 맞이할 새로운 차원의 비극을 그린다.

주인공 이름은 하늘로 너무 높이 올라 바다에 추락한 이카루스에서 따왔고 ‘자연 인간’ 결사대는 ‘시간의 신’으로 알려진 카이로스 모양의 브로치를 지니고 다닌다. 주인공이 글자를 배우기 위해 집어 들었던 책은 1932년 발표된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였다.

소설이 일과 삶, 죽음 등 묵직한 주제들을 쉴 새 없이 던져도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는 것은 이런 장치가 적재적소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장 섬뜩했던 대목은 AI들이 웃음을 터뜨릴 때였다. 이카루스를 하늘과 같이 떠받드는 AI 비서 매카시가 두 눈에 눈물이 고일 만큼 깔깔 웃어댈 때 왠지 모를 비루함을 맛보았다.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Homo Deus, 인간 신)의 지위에 도전하고 있다. 유전자 편집으로 생명을 복제하고 설계하며 슈퍼 인텔리전스를 만들어 무한대의 지능을 소유하려 한다.

5일 천하로 막을 내린 샘 올트먼 오픈AI 이사회 축출 사태를 보라. 최고의 기술 기업들은 안전벨트를 풀고 연일 과속 페달을 밟고 있다. 회사를 떠난 건 AI 안전을 중시한 최고과학자 일리야 수츠케버였다.

기술 발전의 가파른 기울기 변화를 감지한 미래 학자 래리 커즈와일은 AI가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singularity)이 2029년에 올 것이라고 자신의 기존 전망을 수정했다. 애초에 그는 특이점이 2045년에 올 것으로 봤다.

아이러니한 것은 호모 데우스가 곧 스스로를 사라질 운명으로 내몰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 과학자 렉스 프리드먼이 진행하는 유명 팟캐스트에 출연한 로만 얌폴스키 루이빌대학교 컴퓨터 과학자는 “AI가 인간을 멸종할 확률이 99.9%”라고 주장한다.

이 정도 종말론까지는 아니더라도 2016년 ‘이세돌- 알파고 쇼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문가들이 ‘강한 AI(strong AI)’의 등장을 전망하고 있다.

우리가 고뇌하는 인간이 아니라 AI의 극진한 돌봄과 보살핌을 받는 ‘애완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자족한다면 멸종의 길은 피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오윤희 지음 | 그래비티북스 ㅣ364쪽ㅣ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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