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 있다. 가족들 생활하는 비용이랑 연봉 등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주겠다고 하더라. 만약 스톡옵션을 통해 주식까지 받았다면 그 가치가 수십, 수백억 단위였을 수 있다.”

최근 한 반도체 전문가를 만나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는 “중국 기업들이 사람을 잘 파악해서 타깃으로 하는 것 같다”며 “나는 거절했지만 주변 얘기를 들어보니 좋은 엔지니어들이 (중국으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더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반도체 업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겁니다. 중국이 각종 산업을 키우면서 핵심 동력이 될 인재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글로벌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의 경우 미·중 패권 경쟁 주 무대로 떠오르면서 향후 이같은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은 중국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각종 규제를 더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뿐 아니라 첨단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장비 등의 수출을 모두 막은 상태입니다. 반도체를 포기할 수 없는 중국으로선 어떻게든 자립에 성공해야 하니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될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겠죠.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단순히 국내 핵심 인력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칫 기술 유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해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데요,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잊을 만하면 반도체 기술 유출 문제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합니다. 지난 6월에는 삼성전자 임원 출신이 중국에 삼성전자 복제 공장을 세우려다 붙잡혀 충격을 주기도 했죠.

중국은 미국 압박에도 보란 듯 첨단 반도체 기술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업계에선 중국 YMTC가 메모리 반도체 종류인 낸드플래시 최신 제품 양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낸드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셀(cell)을 겹겹이 쌓아 층(단)을 형성해 용량을 늘리는데요, YMTC가 232단 낸드를 선보였다고 합니다. 업계 최고 층수인 238단(SK하이닉스)에 근접한 겁니다.

이같은 시도가 얼마나 사업성이 있을지, 그리고 기술력이 업계 주요 기업들과 대등한 수준인지를 두고선 회의적인 의견들이 나옵니다. 낸드 기술 난도가 또 다른 메모리 반도체 품목인 D램보다 낮아 가능한 시도였다는 평가도 있죠. 다만 중국이 앞으로 미국 제재에 어떻게 맞설지를 내다보는 데 있어선 이번 사례가 시사하는 것이 많습니다.

일각에선 미국이 압박 강도를 높일수록 오히려 중국 반도체를 키우는 꼴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반도체 최대 소비 시장인 중국을 현지 기업이 독차지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실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해외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가 중국에 진출하지 못하면 오히려 현지 팹리스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로선 미·중 갈등이 심해질수록 여러모로 득보단 실이 큰 상황입니다.

업계는 내년에도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봅니다. 내년에 미국 대선이 있다 보니 조 바이든 대통령 재선 여부에 따라 미국 기조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안보 자산인 반도체 분야만큼은 양국 경쟁과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하네요. 정부와 업계가 이같은 상황 가운데 국내 반도체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찾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편집자주현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매일 듣는 용어이지만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도통 입이 떨어지지 않죠. 어렵기만 한 반도체 개념과 산업 전반의 흐름을 피스앤칩스에서 쉽게 떠먹여 드릴게요. 숟가락만 올려두시면 됩니다.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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