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 원대히 품었던 꿈을 기어코 실현했다. LG 트윈스 주장 오지환(33) 이야기다. 선수단을 29년 만의 우승으로 이끌고 한국시리즈(KS)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LG는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KS 5차전에서 kt wiz를 6-2로 이겼다. 1차전을 패했지만 2~5차전을 내리 승리해 종합 전적 4승 1패로 대망의 트로피를 품었다. LG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출범한 서울 구단 MBC 청룡을 1990년 인수했다. ‘신바람 야구’를 표방하며 최고 인기 구단으로 도약했으나 지난해까지 KS 우승은 두 번(1990·1994)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포스트시즌 진출부터 애를 먹으며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하곤 했다.

오지환은 그런 LG를 꾸준히 응원하며 프로야구 꿈을 키워왔다. 2009년부터는 설움을 피부로 실감했다. LG에 유망주로 입단해 선배들과 실패를 함께 경험했다. 매번 시즌을 앞두고 꾀한 반전이 무위로 돌아갔다. 주장으로 나선 올해는 달랐다. 남다른 책임감으로 더그아웃 안팎에서 솔선수범하며 침체한 분위기를 돋았다. 준수한 성적도 남겼다. 정규시즌 126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8(422타수 113안타) 8홈런 62타점 16도루 64볼넷 OPS 0.767을 기록했다. 리그 정상급 수비를 곁들이며 LG를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끌었다.

오지환은 KS에서도 펄펄 날았다. 1~5차전 모두 유격수로 선발 출전해 타율 0.316(19타수 6안타) 3홈런 8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특히 2~4차전에선 KS 사상 최초로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렸다. 영양가도 만점이었다. 2차전에선 1-4로 뒤진 6회 추격의 불씨를 살리는 솔로포를 터뜨렸다. 3차전 5-7로 뒤진 9회 2사에는 역전 3점 홈런을 기록했다. 경기가 끝날 수 있는 상황에서 kt 마무리 김재윤을 상대로 쳐낸 결승포였다. 오지환은 4차전에서도 6-1로 앞선 7회 승부에 쐐기를 박는 3점 아치를 그렸다. 이날 기자단 투표에서 아흔 표 가운데 여든세 표를 받는 압도적인 지지(득표율 86%)로 MVP에 올랐다. 트로피와 상금 1000만 원을 챙겼다.

오지환은 “내게는 15년, LG 팬분들은 29년을 기다려온 우승”이라며 “기쁘고 울컥한 느낌이 든다. 아울러 함께 야구를 했던 선배들이 많이 생각난다”고 했다. KS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묻는 말에는 “kt엔 직구가 좋은 투수들이 많았고 왼손 투수가 없어서 부담이 없었다”라며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직구 타이밍을 노렸고, 공격적으로 타격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염경엽 LG 감독님이 시즌 초부터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주문했는데, 이런 환경이 선수들에게 도전 의식을 키운 것 같다”며 “젊은 선수들이 KS에서 주눅 들지 않고 적극적으로 플레이한 밑바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MVP 등극과 함께 고(故) 구본무 LG 트윈스 전 구단주가 남긴 롤렉스 시계의 주인공이 됐다. 2018년 타계한 구 전 구단주는 1997년 “KS에서 우승하면 MVP에게 고급 손목시계(롤렉스)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그해 해외 출장길에서 직접 약 8000만 원을 주고 구매했다. 하지만 26년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LG 구단 대표이사실 금고에 사실상 방치해야 했다.

역사적 의의를 지닌 시계는 오지환의 손을 거쳐 구광모 LG 회장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오지환은 “차고 다니기에는 부담된다”며 “선대 회장님의 유품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구광모 회장님께 드리겠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전시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롤렉스 시계 대신 다른 좋은 선물을 받고 싶다. 요즘 시대에 걸맞은 좋은 시계를 받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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