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벤처캐피털(VC)들이 일본을 투자 영토 확장 1번지로 정했다. 스타트업 불모지로 꼽혔던 일본이 디지털 전환 수요와 정부 정책을 앞세워 빠르게 창업 생태계를 키우고 있어서다. 국내 VC가 일본 벤처펀드 출자자로 나서는가 하면, 벤처펀드 직접 결성도 시작했다.

일본 시민들이 도쿄의 중심가 시부야 거리 횡단보도는 건너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일본 시민들이 도쿄의 중심가 시부야 거리 횡단보도는 건너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13일 VC업계에 따르면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IMM인베스트먼트, 신한벤처투자 등 국내 주요 VC들은 최근 잇따라 일본 진출을 확정하고 벤처펀드를 조성했다. 과거 국내 VC들이 일본 벤처투자를 후순위로 미루고 미국과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에 집중했던 것과 대조된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일본 벤처펀드에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의 일본 진출을 택했다. 일본 현지 VC인 DNX벤처스가 운용하는 벤처펀드 출자자로 참여, 본계정 자금 약 65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한 후 투자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말 일본 법인인 IMM재팬이 조성하는 벤처펀드와 병행펀드 구조로 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펀드를 결성했다. 신한벤처스는 이보다 앞선 작년 10월 일본 VC와 손잡고 국내 VC로는 처음으로 일본 현지 벤처펀드를 조성했다.

이외에 LB인베스트먼트, 라구나인베스트먼트, 위벤처스 등이 일본 현지 VC와 협업하는 형태로 일본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주요 VC 대표들 중 최근 일본을 찾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면서 “관심이 확실히 높아졌다”고 했다.

국내 VC들이 일본 진출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제 막 태동기에 접어들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기존 산업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았던 일본 정부가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지원에 나서면서 투자 기회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앞서 2022년 일본 정부는 향후 5년 내 스타트업 수를 10배인 10만개사로 늘리고,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100개사 육성을 목표로 내놨다. 동시에 10조엔(약 89조898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비상장기업 거래 활성화를 위한 공시 규칙 완화 등 규제 완화도 진행 중이다. 유망 스타트업을 조기 발굴해 투자할 경우 투자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일본의 디지털 전환 수요가 커진 것도 국내 VC들의 일본 진출을 이끌고 있다. 국내 VC 고위 임원은 “국내 VC들은 국내에서 이미 디지털 전환과 온라인 플랫폼의 빠른 성장을 경험한 만큼, 투자처 발굴이 용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VC 글로벌브레인의 글로벌브레인얼라이언스포럼 네트워킹 행사. /글로벌브레인 홈페이지
일본 VC 글로벌브레인의 글로벌브레인얼라이언스포럼 네트워킹 행사. /글로벌브레인 홈페이지

시장에선 국내 VC들의 일본 진출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저금리 기조로 벤처투자 시장에 돈이 돌면 투자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고, 또 역대급 엔화 약세로 엑시트(투자금 회수) 시 투자 수익에 더해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실제 지난해 말 일본 최대 VC인 브레인글로벌이 도쿄에서 개최한 네트워크 행사 글로벌브레인얼라이언스포럼(GBAF)에만도 국내 VC 10여곳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사에 참가한 한 VC 관계자는 “일본이 국내 VC에 기회의 땅으로 자리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국내 VC의 일본 진출이 성과로 이어지긴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내놓고 있다. 국내 VC 외에도 글로벌 VC들이 일제히 일본으로 진출을 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 스타트업들마저 한국 VC의 투자유치보단 미국 VC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글로벌 조사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세계 각국 VC가 일본펀드에 투자하기 위해 마련해 둔 ‘스탠바이 펀드’(대기자금)가 지난 연말 기준 97억달러(약 1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3년 13억3000만달러(약 1조7675억원)와 비교해 7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 주요 VC의 대표는 “일본은 이미 디지털 전환 수요에, 저금리, 정책 지원 호재를 노리는 VC 전쟁터로 변모하는 모양새”라면서 “일본 진출을 현지 기업 투자보다는 포트폴리오사의 진출을 보조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접근하는 게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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