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기준 100개 병원 전공의 사직서 제출 현황 / 사진=뉴시스
지난 23일 기준 100개 병원 전공의 사직서 제출 현황 / 사진=뉴시스

최근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의사단체와 정부 간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는데요. 특히 전공의와 의대생 등 젊은 의료인들을 중심으로 의대 증원에 대한 반발이 극심합니다. 이미 전공의와 의대생 대부분이 집단 파업과 휴학 등 집단행동에 돌입한 가운데 파업에 앞서 병원 전산망 내 자료를 삭제하도록 종용하는 글이 인터넷에 유포돼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계획을 발표한 이후 의대생 증원에 반대하는 전국 전공의들이 전면 휴업에 들어갔는데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로 의료현장의 혼란이 갈수록 가중되는 상황입니다. 

◇”정보 지우고 나와라”…선 넘은 전공의 행동지침
 
이러한 가운데 최근 다수 의사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 ‘병원 나오는 전공의들 필독’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되었는데요. 해당 글은 “인계장을 바탕화면과 의국 공용폴더에서 지우고 나오라” “세트 오더도 다 이상하게 바꿔버려라” “복구 가능한 병원도 있다니까 제멋대로 바꾸는 게 가장 좋다” “오더 중 2~3개를 삭제하라” “용량을 10분의 1로 줄이라”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고의로 의료 기록을 삭제·조작해 업무 혼란을 야기하라는 의미인데요. 하지만 이런 행동지침을 따랐다간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21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가 후송되고 있다. 2024.02.21. / 사진=뉴시스
21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가 후송되고 있다. 2024.02.21. / 사진=뉴시스

전공의 대다수가 근무하는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의료진이 진료·간호 업무를 위해 EMR(전자의무기록)시스템과 OCS(처방전달 시스템)을 이용합니다. 특히 연간 매출 혹은 세입이 1500억 원 이상인 상급종합병원은 정보통신망법상 ISMS(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 의무화 대상인데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상위 병원 50여 곳은 이미 ISMS 체계 인증을 취득했습니다.
 
ISMS 인증요건의 주요사항 중 하나는 ‘로그 및 접속 기록’에 대한 시스템 마련과 관리입니다. 인증을 취득한 기관은 사용자의 접속일시와 접근한 파일 등에 대해 적어도 6개월 이상으로 정해진 기간동안 관련 기록을 보존하게 되는데요. 이 같은 접속 기록 보존은 개인정보보호법에도 안전성 확보조치 의무의 일부로 규정돼 있습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 약칭: 정보통신망법 )
 
제47조(정보보호 관리체계의 인증) ② 「전기통신사업법」 제2조제8호에 따른 전기통신사업자와 전기통신사업자의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정보를 제공하거나 정보의 제공을 매개하는 자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제1항에 따른 인증을 받아야 한다.

중략

3. 연간 매출액 또는 세입 등이 1,500억원 이상이거나 정보통신서비스 부문 전년도 매출액이 100억원 이상 또는 3개월간의 일일평균 이용자수 100만명 이상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

서울의 한 의과대학 / 사진=뉴시스
서울의 한 의과대학 / 사진=뉴시스

병원은 다량의 개인정보가 오가는 탓에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방지와 사후조사를 위해 사용자 이용기록을 남겨야 하는 구조인데요. 이 때문에 무단으로 문서를 삭제하거나 변조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누가 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 정보통신 보안 전문가는 이에 대해 “EMR 시스템·OCS 등 전산망이 아닌 병원 컴퓨터에 파일 형태로 저장된 문서를 훼손하더라도 보안 침해사고 조사는 CCTV 영상과 건물 출입기록 대조를 병행한다”며 “원격접속이 불허되고 건물 내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병원은 침해자 적발이 쉽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글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경찰은 지난 19일 사건을 접수해 게시자 IP 추적 수사에 나섰는데요.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메디스태프 본사에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강제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본문 내용과 관계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본문 내용과 관계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퇴사 전 업무 자료 삭제…어떤 처벌 받게 될까?
 
이렇듯 직장인이 퇴사하기 전 업무용 파일을 훼손해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드물지 않은데요. 지난 2022년 1월 백업하지 않은 자료를 인수인계 없이 삭제한 회사 임원 A씨가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판례가 있습니다.
 
올 1월에는 회사 구글 계정에서 파일 4216개를 삭제한 혐의로 기소된 직원 B씨가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B씨는 파일을 즉시 복구 가능한 ‘휴지통’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했지만 유죄 판결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업무 관련 자료나 기록 등을 삭제하면 형법에 따라 재물손괴죄나 업무방해죄가 성립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형법 제 314조(업무방해)에 따르면 컴퓨터 정보처리장치, 전자기록 등을 망가뜨리거나 허위 정보를 입력해 업무를 방해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형법
 
제314조(업무방해) ①제313조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컴퓨터등 정보처리장치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다만 업무방해가 성립되려면 고의로 자료를 삭제해 업무를 방해하려 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원본이 보존되고 있거나 재산적 가치가 희박한 자료를 삭제한 경우에 대해서는 재물손괴죄와 업무방해죄를 인정하지 않은 사례도 있죠.
 
만약 전공의들이 병원 전산망 내 자료를 삭제해 환자 생명과 결부된 진료를 방해한 점이 입증될 경우, 형량 산정이 불리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요.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의사에게 금고형 집행유예 이상이 확정되면 법률상 결격사유가 있는 것으로 보고 범죄 종류와 상관 없이 의사면허를 취소하도록 개정된 바 있습니다.

정부전공의 면허 취소걸고 팽팽한 힘겨루기
 
한편 보건복지부는 전국 221개 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 상태입니다. 진료유지명령은 의료인의 사직서 제출 등을 통한 진료 중단을 금지하는 명령인데요. 진료유지명령 위반이 확인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최근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 범죄 구분 없이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6일에는 정부가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 대해 이달 29일까지 복귀하면 면허 취소 등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회유하기도 했는데요. 

이상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2차장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4.02.26.
이상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2차장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4.02.26.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전공의들을 향해 “여러분의 목소리는 환자 곁에 있을 때 더욱 크고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당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픈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꿈이 매일 실현되는 공간은 바로 병원이었다”며 “지금 여러분이 떠난 병원은 그야말로 불안과 걱정이 가득하다”고 말했는데요. “밤낮으로 피땀 흘려 지키던 현장으로 돌아와 더 나은 의료 환경을 위해 대화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글 : 법률N미디어 인턴 송영주
감수: 법률N미디어 엄성원 에디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