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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탈 전공의들의 사직을 허용하고 행정처분 절차도 중단한 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전공의 전용공간을 지나고 있다.(사진=연합)

서울의대 교수들에 이어 개원의 중심의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집단 휴진을 예고하고 나서며 내년도 의대증원 확정 이후 해소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의료공백 사태가 다시 의정간 강대강 대치로 치닫는 모양새다.

정부가 \’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절차 중단\’이라는 유화책을 내놨지만 의사단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행정처분을 취소하라며 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요구에 대해 정부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맞서며 양측이 다시 평행선을 긋고 있다.

의협이 집단 휴진에 돌입하면 이 단체의 역대 4번째 집단행동이 된다. 단체의 중심인 개원의의 휴진 참여율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대교수들까지 동참 의사를 밝힌 상황이라 이번엔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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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의협),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등 의사단체들이 총파업 투표를 진행하며 의정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한 내원객이 엎드린 채 휴식하고 있다(사진=연합)

◇ 2000년 이후 4번째 의협 집단행동…의대교수단체 “의협 방침 따를 것”

의협은 9일 오후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열고 4~7일 실시한 집단 휴진 여부 투표의 결과와 함께 구체적인 집단휴진 방식과 시점 등을 발표한다.

아직 공식 발표는 안 했지만, 의협이 집단휴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투표자의 과반이 휴진에 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의협은 오는 20일을 집단행동의 디(D)-데이로 염두에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이 집단휴진에 돌입하면 의약분업에 반대한 2000년, 원격진료 추진을 막은 2014년, 의대증원과 공공의대 신설 추진 등에 반발한 2020년에 이어 4번째 대대적인 집단행동이 된다.

이번 투표에는 전체 12만9천200명 중 7만800명이 참여해 투표율이 54.8%였는데, 의협은 지금까지 비슷한 성격의 투표 중 투표율이 가장 높다며 투쟁 의지를 높이고 있다.

의협은 의료법이 규정한 법정단체로, 의사들은 의사 면허를 받으면 자동으로 가입되지만 개원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의협이 이번 의료공백 사태에서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협의 주축인 개원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이탈한 전공의들이나 이미 집단 휴진을 한 의대교수들과 달리 본격적인 집단 휴진은 하지 않았다

이번 집단휴진은 의대교수들도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서울의대 비대위)는 오는 17일 서울대학교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강남센터 등 4개 병원에서 휴진하겠다고 지난 6일 발표했다.

40개 의대 중 20곳 의대의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참여하는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 7일 총회를 연 뒤 “의협, 대한의학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뜻을 함께한다”며 “의협의 집단행동 방침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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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앞즐 가운데)를 비롯한 의사 등 관계자들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정부 한국 의료 사망선고 촛불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

◇ 정부, 원칙 뒤집고 복귀 전공의 \’행정처분 중단\’…의협 “중단 말고 취소해야”

의대 교수들과 의협의 집단휴진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정부가 유화책으로 이탈 전공의들의 \’출구전략\’을 발표하자 나왔다.

정부는 지난 4일 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 중단과 병원의 사직서 수리 허용을 내용으로 하는 이탈 전공의 복귀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이탈 전공의에 대해 선처하지 않겠다며 엄정 대응 방침을 강조해왔던 것에서 입장을 바꿔 복귀 전공의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미복귀자에게는 병원이 사직서를 수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전공의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이번에도 의사불패 신화가 깨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내놓은 고육책이었지만, 이 발표를 계기로 의료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행정처분 취소가 아닌 \’중단\’은 복귀한 의사들이 또 집단행동을 할 경우 정부가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정부가 면허정지 처분을 \’중단\’한다고 한 것은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이 여전히 적법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면허정지 처분을 \’중단\’한다고는 하지만 사직서 제출 후 업무를 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범법행위\’로 남아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미복귀자의 행정처분과 관련해서는 “전공의들이 얼마나 복귀하는지, 의료 현장의 비상진료체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여론 등을 감안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응 방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의사 단체들은 전공의들이 다칠 수 있는 만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의사단체들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행정처분을 \’취소\’하면 그동안 내린 조치의 정당성이 사라지는 데다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집단행동을 용인하는 것인 만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주장”이라며 “비난을 감수하면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데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사단체들이 의대 증원이 확정됐는데도 유독 강경하게 나오는 데에는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개혁에 대한 반감이나 2016년 이후 증원에 대한 대정부 투쟁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의료개혁 과제에는 의사들이 반대하는 비대면진료 통제 강화나 진료지원(PA) 간호사 합법화 등이 포함돼 있다. 의료사고에 대한 공소 제기를 면제해주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의 경우 의사들은 우호적이지만 환자단체들은 부정적이어서 의사 단체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될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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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

◇ 진짜 의료대란 올까…“제한적” vs “이번엔 달라”

개원의들과 의대교수들의 집단휴진에 대해서는 파급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의협의 주축인 개원의들의 경우 휴원이 수입 감소로 직결되는 자영업자인 데다 동네 단골 환자들을 상대하기 떔문에 병원 문을 닫기 쉽지 않다. 지난 2020년 집단행동 당시 개원의들의 참여율은 한 자릿수에 그쳤었다.

의대증원이 이미 확정됐고, 정부가 최근 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중단하고 수련병원이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수리하도록 한 유화책을 낸 상황에서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도 부담이다.

반면 의사들 사이에서는 2025학년도 의대 입장 증원 규모가 전례 없을 만큼 큰 데다 전공의들이 계속해서 큰 피해를 감내하는 만큼 이번에는 실제로 진료를 접는 동네 의원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의대교수들의 집단 휴진과 관련해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이미 서울의대 교수들이 앞장서서 전체 휴진을 결의했고, 전의비가 의협의 투표 결과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휴진을 결정하는 의대와 대학병원이 잇따라 나올 수 있다. 의대교수단체들은 그동안 \’전공의들이 다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왔었다.

다만 대학별로 휴진 동참 선언이 이어지더라도 실제 의료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가능성도 높다.

의대교수들은 이번 의료공백 사태 동안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실제로 병원과 대학을 떠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 여러 차례 휴진 계획을 밝혔지만 환자 곁을 지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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