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 후보로 추천된 정은보(63) 전 금융감독원장의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거시·국제금융 전문 경제관료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을 새로운 선장으로 내세운 한국거래소호(號)가 금주 출항한다. 시장에선 전임 이사장 임기 만료 시기보다 신임 이사장에 대한 인선이 한 달 이상 지체된 만큼 업계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 국내 자본투자시장을 총괄할 임무를 맡게 된 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분위기다. 특히, 금융 당국이 강력 추진 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드라이브에 속도를 더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14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정 전 원장을 새 이사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부의한다. 선임안이 주총에서 가결되면 정 전 원장의 새 이사장 취임식은 오는 15일 진행될 예정이다.

정 전 원장은 과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재직 시절 증권선물위원장을 역임한 만큼 자본투자시장엔 전문성이 있는 인물로 시장에선 이미 검증을 받은 인물로 평가된다. 지난 2020년 거래소 이사장 선임 당시에도 손병두 현 이사장과 함께 하마평에 오른 바 있다.

금감원장 시절에도 정 전 원장은 ‘시장친화적’ 행보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업계와 소통을 강조한 것은 물론, 취임과 동시에 금감원의 감독·검사 체계를 속도감 있게 개편하면서다.

거래소 새 수장 자리에 앉는 것과 동시에 정 전 원장에게 놓인 최우선 과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안을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마련하는 일이다. 세부안에 대한 발표 예정 시점이 이달 중으로 예정된 만큼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거래소는 기업 가치 우수 상장사를 모은 상품 지수 ‘코리아 프리미엄지수(가칭)’를 개발하기 위한 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가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본 도쿄(東京)증권거래소가 자기자본 비용 이상 수익을 낸 기업과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를 초과하는 기업에 가중치를 부여한 ‘JPX프라임150지수’가 벤치마킹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 부양책을 마련한 이후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데도 정은보호 거래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거래소는 상장사 지배구조보고서 기재 등 기업가치 개선 대책의 자율공시를 유도할 주체”라며 “페널티(불이익) 측면에서 PBR 1배 미만 기업들의 목록을 공개하는 이른바 ‘네이밍 앤드 셰이밍(공개 거론해 망신 주기)’을 어느 정도 강도로 시행할지 여부에 기업들은 물론 금융투자업계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불법 공매도 근절을 위한 구체적인 실현 방안에 대해서도 시장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정은보호 거래소에 대한 첫 가늠자는 불법 공매도 전산 시스템 구축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시간 감시 체계가 구축되지 않으면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6월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후 총선이 끝나면 이를 풀 것이란 예측이 나오지만, 부작용을 완벽히 해소할 수 있는 전자 시스템을 확실히 구축하지 못하면 공매도를 계속 금지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국내 증시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주가 조작 등 불공정 거래에 대한 대응책도 주요 이슈다. 또 일명 ‘파두 사태’를 계기로 신뢰도가 저하된 것으로 평가되는 기업공개(IPO) 관련 절차 개선 작업 역시 속도가 붙을 지도 관건이다. 한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올 하반기 시범운영 후 내년 초 정식 출범하는 대체거래소(ATS) 관련 업무와 토큰증권발행(STO) 관련 사업 등도 주요 현안”이라고 짚었다.

거래소 내부에선 신임 이사장 인선 지체로 지체된 내부 임원 인사를 통해 정은보호의 방향성과 강조 지점이 명확해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특히, ‘원칙주의’에 입각한 꼼꼼한 업무처리 방식으로 정평이 난 정 전 원장이 과거 금감원장 시절 보였던 ‘카리스마’를 거래소에서도 보일지 관심이다. 정 전 원장은 금감원장 취임 당시 임원 전원에게 일괄 사표를 요구한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지난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 연말 인사를 한 달 가량 앞당기고, 전체 국·실장 90%를 교체하는 초강수 인사를 두면서 조직 장악력을 발휘한 바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거래소 내부에선 정 전 원장의 ‘카리스마’적 업무 스타일이 거래소 내부 인사는 물론, 증권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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