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서는 갈 수 없어요.”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가 평소 “내 여자(my girl)”라 불렀던 동갑내기 부인 외제니 여사와 한날한시에 영면을 택했다. 향년 93세.

드리스 판 아흐트 전 총리와 부인 외제니 여사의 생전 모습.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누리집 갈무리
드리스 판 아흐트 전 총리와 부인 외제니 여사의 생전 모습.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누리집 갈무리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판 아흐트 전 총리 부부는 지난 5일 66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동반 안락사를 택했다. 두 사람은 학생 시절 처음 만났으며, 세 자녀를 뒀다. 

판 아흐트 전 총리가 생전 설립한 권리포럼 연구소는 “판 아흐트 전 총리 부부가 고향인 네이메헌에서 손을 맞잡고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장례식은 비공개로 치렀다. 헤라르 존크먼 권리포럼 연구소장은 네덜란드 공영방송 엔오에스(NOS)에 “판 아흐트 부부는 매우 아팠지만, ‘혼자서는 갈(죽을)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이 함께 세상을 떠난 뒤 ‘죽어서도 함께인 사랑’이 부각됐으나,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하려면 사랑과는 별개로 각 개인이 다음 6가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환자가 본인의 의지로 신청할 것 △치료가 어려운 절망적이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을 것 △의사가 환자에게 의료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고 환자가 이를 이해했을 것 △의사와 환자 모두 고통을 줄이려면 안락사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 △여러 의사에게 상담받을 것 △의사는 환자가 가장 편안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수단(대개 약물)을 마련하는 것.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1981년 2월 9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왼쪽)과 대화 중인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오른쪽). 당시 50세. ⓒGettyImages Korea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1981년 2월 9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왼쪽)과 대화 중인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오른쪽). 당시 50세. ⓒGettyImages Korea

부부는 모두 아팠다. 판 아흐트 총리는 2019년 팔레스타인 추모 행사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외제니 여사도 다른 질병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지만, 그런 네덜란드에서도 동반 안락사는 4년 전 처음 이뤄졌다. 네덜란드의 동반 안락사 사례는 2020년 13쌍으로 시작해 2022년엔 두 배 이상인 29쌍으로 늘었다. 2022년 네덜란드에서는 총 8720명이 안락사를 택했다. 그해 안락사 사례 중 약 0.7%만이 동반 안락사였던 것.

네덜란드 안락사 전문기관 ‘엑스퍼티센트럼 유토나시’의 대변인 엘케 스와트는 가디언에 “동반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 동반 안락사 사례는 여전히 드물다”고 말했다.

한국서 ‘동반 안락사’ 가능?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7.5명이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연구결과가 2021년 나왔다. ⓒ어도비 스톡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7.5명이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연구결과가 2021년 나왔다. ⓒ어도비 스톡

한국에서 안락사는 불법이다. 동반 안락사는 말할 것도 없다. 심폐소생술이나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의 연명의료를 거부할 권리만 있다. 

그러나 안락사에 대한 수요는 커지는 흐름.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 연구팀이 2021년 3월부터 4월까지 대한민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나 의사 조력자살 합법화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76.3%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남은 삶이 무의미하다’가 30.8%로 가장 큰 이유에 꼽혔으며, ‘좋은(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라는 의견이 26.0%로 뒤를 이었다. 연구팀은 찬성률이 2008년과 2016년 수행한 조사에 비해 1.5배가량 상승했다고 밝혔다.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23.7%에 그쳤는데, 그 이유로는 ‘생명 존중’이 44.3%로 가장 높았으며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의견이 15.6%, ‘악용과 남용의 위험’이 있다는 응답이 13.1%였다.

유해강 에디터 / haekang.yo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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