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지난 1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대학별 증원분의 50~100% 범위에서 스스로 정하도록 허용했다. 의대 증원 규모는 2000명에서 1000명대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증원 규모가 컸던 지역 거점 국립대들은 정부 방침대로 감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립대는 아직 신중한 분위기다. 일부 대학은 “정부가 의정(醫政) 갈등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학교 측에 해결을 떠넘긴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오후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 모집하도록 허용한다”고 했다.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충남대·충북대·제주대 등 국립대 6곳 총장들이 전날 건의한 ‘의대 증원 자율 조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앞서 정부는 전국 40개 의대의 2025학년도 입학 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리는 것을 시작으로 향후 5년간 의대 정원을 2000명씩 확대한다고 밝혔다. 의대생들은 지난 2월부터 휴학과 수업 거부 등 거센 반발을 이어오고 있다. 정부는 사태가 악화를 막기 위해 ‘증원 규모에 변함이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났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고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지난 15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고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증원 규모 감축’ 국립대는 적극, 사립대는 신중

2025학년도 대입에서 의대 정원이 늘어난 지역 거점 국립대는 총 9곳으로, 증원 규모는 총 826명이다. 구체적으로 경상국립대(124→200명), 경북대(90→200명), 충남대(90→200명), 충북대(151→200명), 강원대(83→132명), 제주대(60→100명), 전북대(58명→200명), 전남대(75명→200명), 부산대(75명→200명) 등이다.

전날 국립대 6곳은 총장 명의로 의대 증원 규모를 자율적으로 줄이자는 취지의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 나머지 국립대 3곳(전북대, 전남대, 부산대)도 증원 감축에 동참할 수 있다. 국립대 9곳이 모두 증원분의 50%만 뽑는다고 계산하면 413명을 덜 뽑는 것으로, 전체 증원 규모가 1597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전북대 관계자는 “기존 증원분과 현재 교육 여건 등을 고려해 의대와 협의를 거쳐 감축 규모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립대까지 동참해 전국 32개 의대가 모두 증원분의 50%만 선발하는 경우 의대 정원은 2000명에서 1000명까지 줄어들 수 있다. 다만 대다수 사립대는 일단 다른 의대의 동향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정원이 기존 50명 미만에서 100~120명으로 늘어난 미니 의대의 경우 감축 규모가 적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립대의 의대 증원 감축 가능성에 대해 “(국립대 6곳 총장의 건의를 둘러싸고) 공감대가 폭넓게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밖에 다른 대학의 리더들, 학장들과 현장에서 충분히 소통하면서 이번에 발표된 방안이 잘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대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에서 거점국립대 총장 건의에 대한 정부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가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대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에서 거점국립대 총장 건의에 대한 정부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의대생 집단 유급만큼은 막아야 하는데…”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줄이기로 한 것은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과 전공의·교수 이탈로 인한 의료 파행을 막기 위해서다. 의대생들은 지난 2월 중순부터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집단으로 휴학계를 내고 수업을 거부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의대생 1만623명이 휴학을 신청했다. 전국 의대 재학생(1만8793명)의 56.5% 수준이다.

의대는 보통 수업일수의 3분의 1이나 4분의 1 이상 결석하면 F학점을 주고, F학점을 한 번이라도 받으면 유급된다. 전국 의대들은 학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2월 예정이던 개강을 미뤘다. 그러나 고등교육법에 따라 수업일수(1학기 15주, 1년 30주)를 채워야 하는 상황에서 더는 개강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 이달부터 연달아 수업을 시작했고 의대생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의대생이 집단 유급되는 경우 의사 수급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의대 1학년이 집단 유급되면 기존 정원 3058명에 내년에 새로 들어오는 5058명(증원 2000명+3058명)을 포함해 총 8116명이 함께 수업을 받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정원이 3~4배씩 늘어나는 의대의 경우 교수와 강의실, 카데바(실습용 시신) 확보 등 교육 환경 개선이 우선 필요하다는 현장 의견도 수렴했다. 여기에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 전공의들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하는 등 의료계 압박이 계속되자, 정부는 결국 의대 증원 규모를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5월까지 모집 요강 공고”… 발등에 불 떨어진 대학

의대 정원을 확정해 5월까지 대입 모집 요강을 공지해야 하는 대학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는 지난달 늘어나는 의대 정원 2000명을 32개 비수도권, 경인 지역 대학에 배정했다. 대학들은 의대 증원분을 반영해 학칙을 개정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달 30일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모집 인원 등을 반영해 입시 계획을 제출, 대교협 승인을 받아 5월까지 홈페이지에 모집 요강을 올릴 계획이었다.

2025학년도 대입에서 재외국민 전형은 7월 8일부터, 수시 전형은 9월 9일부터 시작된다. 대학들은 우선 각 의대와 증원 감축에 대해 협의하는 게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4월 말까지 대교협에 입시 계획을 제출해야 하는데 주말을 제외하면 일주일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셈이라 일정이 촉박하다”며 “일단 의대와 증원 규모부터 협의한 뒤 대교협 승인을 받고, 학칙은 추후 개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대학에 갈등을 해결하라고 넘긴 것 같아 혼란스럽다”며 “각 의대에서도 증원 규모를 둘러싸고 내분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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