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조성하는 ‘클린 앤 그린(Clean&Green)’ 전략으로 공원녹지체계를 구축했다. 300여 개의 크고 작은 정원을 조성한 것은 물론이고 건물 곳곳에 옥상 정원을 설치하면서 도심 녹지를 확보해 푸른 도시를 만들었다. 또 다양한 식물과 인공 폭포를 갖춘 쥬얼 창이 공항(Jewel Changi Airport), 세계 최대 규모의 유리온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 등 랜드마크에도 자연을 녹여냈다. ‘정원 도시’를 넘어 ‘정원 속 도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생활공간과 어우러진 자연도 좋지만 날것 그대로의 자연에 대한 갈증은 남아있을 터.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빌딩 숲 너머 숨어있는 대자연 속으로 떠나봤다. 자연의 보고 바다부터 500종이 넘는 열대 동식물이 서식하는 습지 생태계까지. 싱가포르가 숨겨둔 청정 자연에 다녀온 후기를 전한다.

01

자연에서 식탁까지

아후아 켈롱, 스케일드 레스토랑

싱가포르 북동부에 남아있는 켈롱 시설

싱가포르에서의 켈롱(Kelong)은 물 위에 설치한 구조물을 이른다. 나무와 말뚝 따위로 바닥에 고정하고 양어장이나 생활공간으로 이용했다. 과거 싱가포르 근해에서는 켈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도시화를 거친 현재는 양어장 용도의 켈롱팜(Kelong farm)만이 극히 일부 남아있다.

켈롱은 상업용 어업 공간인 만큼 아무나 접근할 수는 없다.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항구 입구에서 검문을 받은 후 잠시 대기. 이후 5분가량 배를 타고 들어가면 물 위에 지어진 양식장, 켈롱팜을 만날 수 있다.





켈롱에서는 초록입 홍합, 농어 등 다양한 어종을 양식한다

이날 방문한 곳은 아후아 켈롱(Ah hua Kelong)이다. 카이(Kai) 아 후아 켈롱 공동 창업주의 안내로 본격적으로 켈롱 팜을 돌아봤다. 얼핏 보면 짙은 바다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망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각각의 그물은 독립된 공간으로 어종별, 개체의 나이별로 나눴다.

농어와 그루퍼 등 어종부터 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양생물을 양식하는 이곳의 대표 어종 중 하나는 초록입 홍합이다. 국내에서 자주 접하는 보라색의 지중해 담치와는 달리 초록빛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바로 잡아 맛보는 홍합은 별도의 조미료가 필요없다

갓 채취한 홍합을 그 자리에서 손질해 한입 맛봤다. 홍합의 풍미를 느끼기 위해서 별도의 조미료 없이 오직 순수한 물로만 삶아냈다. ‘과연 맛있을까’하는 의문도 잠시, 조미료의 빈자리를 가득 채운 신선한 바다향에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이것이야 말로 신선한 해산물만이 낼 수 있는 비법 재료가 아닐까.

아후아 케롱이 운영하는 해산물 레스토랑 스케일트

시식에 그치기 아쉬워 켈롱에서 잡아올린 해산물로 신선한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라벤더 스트리트에 위치한 레스토랑 스케일드(Scaled)는 아후아 켈롱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생산부터 유통, 소비까지 하나의 체인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신선하고 보다 저렴하게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홍합 커리, 오징어 강정 등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판매한다

켈롱에서 맛본 홍합은 이곳에서 보다 훌륭한 요리로 재탄생했다. 신선한 홍합을 삶고 그 위에 홈메이드 커리를 얹어낸 퓨전요리, 홍합 커리(Curry mussels)가 바로 그것. 커리의 매콤한 맛과 향신료가 홍합의 풍미와 어우러져 계속 손을 불렀다. 이밖에도 오징어를 바삭하게 튀겨 만든 오징어 강정(Ojing-eo gangjeong), 꼴뚜기 튀김(Fried baby squid), 새우 알리오 올리오(Prawn dashi aglio olio 등 갖은 해산물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훈제 농어 파테와 바다를 담은 디저트도 선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메뉴는 훈제 농어 파테(Smoked seabass pate)다. 훈연한 농어 살로 파테(Pate)를 만들고 이를 바삭한 사워 도우 빵에 발라 먹는 요리다. 은은한 불향의 부드러운 파테와 바삭한 식감의 샤워 도우 빵이 만나 이루는 조화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식후 나오는 디저트도 훌륭했다. 해산물을 첨가한 것은 아니지만, 바다를 연상시키는 모양새다. 식용 꽃으로 연출한 푸른 바다의 색과 해변, 불가사리와 조개 등 눈으로 한 번, 혀끝으로 또 한 번 바다를 느낄 수 있다.

02

때 묻지 않은 청정 자연을 보고 싶다면

숭게이 부로 습지 보존지



싱가포르 최초의 아세안 헤리티지 파크, 숭게이 부로 습지 보존지

싱가포르의 바다를 만난 후에는 싱가포르의 숲, 숭게이 부로 습지 보존지(Sungei Buloh Wetland Reserve)로 향했다. 87만㎡ 면적에 드넓게 펼쳐진 이곳은 싱가포르 북서부에 위치한 습지 보호구역이다. 싱가포르 고유의 습지 야생 동물을 볼 수 있는 곳으로, 1986년 말레이 자연 학회의 조류 관찰자들이 처음 발견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1993년 자연공원으로 문을 연 이후 높은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에 싱가포르 최초로 아세안 헤리티지 파크(ASEAN Heritage Park)로 지정됐다.





매년 9월에서 3월까지는 숭게이 부로 습지를 찾은 철새를 만날 수 있다

숭게이 부로 습지 보존지는 철새 도래지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들은 추운 겨울철 북반구에서 남반구, 그러니까 러시아와 알래스카에서부터 호주,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 철새들은 이동 중 대륙 곳곳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숭게이 부로 습지 보존지도 그중 하나다.

철새들이 이곳을 찾는 시기는 매년 9월부터 3월까지다. 해당 시기에는 물떼새와 도요새 등 철새 군집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철새 도래 기간을 놓쳤더라도 괜찮다. 숭게이 부로 습지에는 왜가리와 물총새, 태양새 등 조류가 연중 상주한다. 때문에 이곳은 조류 애호가를 비롯한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출사 스폿 중 하나로, 큰 카메라로 무언가를 촬영하는 사진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숭게이 부로 습지 보존지에는 다양한 생태계가 공존한다

숭게이 부로 습지에서 운영하는 전문 가이드 투어를 통해 현지 가이드와 함께 습지 보존지를 돌아봤다. 이국적인 풍경 그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설명과 함께하니 풍경이 더 풍성하게 다가왔다. 이를테면 작은 새들의 먹이가 되는 열매들, 박쥐를 닮은 잎이 가진 특별한 별명, 잎의 모양이 물고기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이 붙은 피시 테일 팜 (Fishtail palm, 공작야자 속) 등 생태계 면면을 더 깊게 감상할 수 있었다.





산책로 곳곳에는 다양한 전망대가 위치한다

습지 보존지 곳곳에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마다 감상할 수 있는 요소가 달라 하나하나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 독수리의 비행을 볼 수 있는 포인트, 망둥어를 관찰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운이 좋다면 물총새(Kingfisher)를 만날 수 있는 곳까지. 각 전망대마다 매력적인 볼거리로 발길을 붙잡는다.

산책로 곳곳에 설치된 악어 조심 표지판

전망대 외에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악어 조심 표지판이다. 평화로운 산책로에 악어의 등장이라니.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나무 울타리와 말뚝 등이 모두 악어의 출입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개체 수가 많아 쉽게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숭게이 부로 습지 보존지에는 악어와 물 왕 도마뱀, 박쥐 등 다양한 생명체가 공존한다

여기서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이드의 안내로 악어 관람 필승 명당을 찾았다. 명당은 다름 아닌 기존 철새 전망대. 철새 철이 아니라 휑한 들판 속에서 눈동자만 굴리는 것도 잠시. 수풀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분홍빛 실루엣은 악어의 그것이다. 준비한 망원경과 고배율 망원 렌즈를 총동원해 겨우 확인한 악어의 모습. 입을 쩌억 벌리고 휴식하는 야생 악어의 모습은 묘한 희열까지 가져다준다.

여기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마뱀이라는 물 왕 도마뱀(Water Monitor)과 건물 지붕에 붙어 휴식을 취하는 박쥐까지.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공존하는 싱가포르의 생태계를 만날 수 있다.

취재협조 = 싱가포르 관광청

싱가포르 = 정윤지 여행+ 기자

사진 = 정윤지 여행+ 기자, 임수연 여행+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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